류안택(柳安澤), 증의정공(贈議政公), Ryu, An-Taek, 생몰년: ?-?, 세: 12,
공은 식(湜)의 차자(次子)로 처음 휘(諱)는 안택(安宅)이였으며, 통덕랑(通德郞), 삼사판관(三司判官)을 재내셨다.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영의정(領議政) 관위(官位)를 추사(追賜)하다.
배위(配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동래정씨(東萊鄭氏)로 부(父)께서 봉래군(蓬萊君)으로 봉(封)해진 기문(起門)이시고, 할아버님은 제(悌)이시고 증조(曾祖)는 승훈(承勳)이시다. 슬하(膝下) 2자(子)를 두셨으니 장자(長子)는 판전농정(判典農正)을 역임(歷任)하고 고려 홍건적(紅巾賊)과 싸우시다 순절(殉節)하여 증(贈) 병조판서(兵曹判書)오 오른 림(臨)이고 차자(次子)는 관(寬)이다.
묘소(墓所)는 대승공(大丞公) 묘(墓) 서쪽 200걸음[步] “左議政柳安澤, 貞淑夫人鄭氏” 음각(陰刻)에는 “계좌정향(癸坐丁向) 가정(嘉靖) 기축(己丑)(1529년) 현손(玄孫) 사성(司成) 경조(敬祖) 근지(謹誌)”에 이르기를“無乃初葬於竹山而所返葬先山耶”라고 새겨 있다.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