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발 (柳發)

류발(柳發), 수촌공(秀村公), Ryu, Bal, 생몰년:1683-1775,. 세:25
英祖朝 名筆 夏亭公派, 자 백여(伯輿). 호 수촌(秀村)

반계 형원(磻溪 馨遠)의 증손이요, 진사 하(進士 昰)의 손이요, 통덕랑 응린(通德郎 應麟)의 장자로 숙종(肅宗) 9년 癸亥 7월 3일 한양(漢陽)에서 태어났다.
명가의 후예로서 능히 가성(家聲)을 이어 명망이 울연하더니 경종(景宗) 3년 癸卯(1723)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영조조(英祖朝)에 이조(吏曹)에서 공의 명망을 듣고 참봉(參奉)을 제수했으나 나가지 않더니, 30년 甲戌 (1754)에 온능참봉(溫凌參奉)으로 나가 그후 누차 옮겨 수운판관(水運判官)을 거쳐 사채감첨정(司宰監僉正)을 지냈다.
45년 己丑(1769) 12월, 당시 공의 나이 87세로 오위장(五衛將)에 특제(特除)되었는데, 이때 연신(筵臣)이 주상께 아뢰기를 『류발(柳發)의 증조 형원(馨遠)이 박식(博識)으로 학술(學術)이 있어 경제(經濟)를 자임 (自任)하고 일찍 저서(著書)에 반계수록(磻溪隨錄)이 있읍니다』하였다. 영조(英祖)께서 들으시고 『류발은 나이가 80여세로 이는 희귀한 일이다』하시고 특히 이 명을 내리셨으며, 그후 수직으로 숭록대부 판중추부사(崇祿大夫判中樞府事)에 가자되었다.
공은 행의(行誼)가 독실하고 경사 백가(經史百家)에 통달하여 문장이 섬부(贍富)함은 물론 필법이 주엄 (遵嚴)하여 사적이 동국서화고(東國書晝考)에 실려 있다.
51년 乙未 8월6일에 향년 93세로 돌아가시니 죽산 정배산(竹山 鼎排山), 지금 용인군 외사면 웅천리 선영 신좌(龍仁郡 外四面 涌泉里 先瑩 辛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평창이씨(平昌李氏)는 하석(夏錫)의 따님으로 2남을 두고 졸하니 고위(考位)와 합부로 모셔있다.
장자 명위(明渭)는 음사로 포천현감(抱川縣監)을 지내고 수직으로 가의대부 동중추(嘉義大夫 同中樞)의 가자를 받았으며, 2자 광위(光渭)는 통덕랑(通德郎)인데 숙부 승지 훈(承旨 蒸)의 후로 출계하였다.
후손은 부천시 오정리(富川市 吾丁里) . 화성군 정남면 발산리(華城郡 正南面 鉢山里)에 세거하고 있다.
※ 朝鮮王朝實錄, 順庵集, 丁巳譜

[입력: ryuj 0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