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병철(柳秉喆), 문령군(文寧公), Ryu, Byeong-Cheol, 생몰년:1807-1899, 세:29
高宗朝 學行, 左相公派, 자 계소(秊昭). 호 향하(香下).
영의정 우복당 전(領議政 愚伏垈 琠)의 10대손이요, 증이조참판 영성군 학면(贈吏曹參判寧城君 學勉)의 아들로 순조(純沮) 7년 丁卯 11월 26일에 지금 포천군 소홀면 고모리(抱川郡 蘇屹面 古毛里) 향적산(香積山) 아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행실이 독실하여 청렴 결백을 스스로 지키더니 고종(高宗) 24년 丁亥(1887) 4월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 되었으며 그 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거쳐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르고 문령군(文寧君)에 습봉(襲鈴)되었다.
31년 甲午(1894)에 일인(日人)의 발호로 시사(時事)가 날로 그릇침을 보고, 그만 관직을 버리고 시골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니 원근에서 와서 배우는 자 수백인에 이르렀다. 그리고 저서로는 수문록활요(隨閒錄猾要)와 향하집(善下集) 3권이 있으며, 36년 己亥 6월 21일 졸하니 향년 93세로 포천군 소흘면 고모리 노고산 상봉 건좌(抱川郡 蘇屹面 古毛里 上峰 乾坐)에 안장되었다. 차자 기일(基一)이 묘지(墓誌)를 짓고, 문인 라상협(門人 羅相協)이 공의 화상찬(晝像贊)을 지었다.
배위 완산이씨(完山李氏)는 지수(趾秀)의 따님으로 2남 3녀를 두어 기중(基中) , 기일(基一)과 참봉 죽계정만선(參奉 竹漢鄭鳴善) , 전주이수곤(全州李秀崑) , 죽산안항선(竹山安恒善)은 그 아들과 사위이다.
장자 기중은 호 우송(友松)인데 조행(操行)이 뛰어나 사림(士林)의 천목(薦目)이 있었으며, 차자 기일은 호 용서(龍西)인데 유학자로 사럼(士林)의 추중을 받았다.
후손이 포천군 소흘면 고모리(抱川那 蘇屹面 古毛里)에 세거하고 있다.
※ 丙寅譜, 追先錄.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