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강 (柳江), 안정공(安靖公), Ryu, Gang, 생몰년: ?-1458, 세:15
世宗朝 蔭仕, 左相公派
도총제 은지(都摠制 殷之)와 공조전서 개성왕승우(工曹典書 開城王承佑)의 따님 사이에 장남으로 한양(漢陽)에서 태어났다.
음사(蔭仕)로 호군(護軍)으로 재직중 세종 11년 己酉(1429) 12월에 진헌사(進獻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와 비위(非違)사실로 파직 당하였다. 13년 辛亥(1431) 12월 직첩(職牒)을 환급(還給)받고 15년 癸丑(1433) 6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제수되었더니 17년 乙卯(1435)에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올랐다.
25년 癸亥(1443) 12월 경상우도처치사(慶尙右處置使)로 나갔다가 이듬해 9월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로 전직되고, 27년 乙丑(1445) 11월에 내직으로 들어와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가 되었다.
문종(文宗)원년 辛未(1451) 10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거쳐 길주목사(吉州牧使)로 나가 선정을 베푸니 가정대부(嘉靖大夫)에 승진됨과 아울러 회령부사(會寧府使)에 전직되었다.
단종(端宗) 2년 甲戌(1454) 5월 진위사(陳慰使)로 명나라를 다녀와 복명(復命)하고 이듬해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서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에 승진하였다.
세조(世祖) 4년 戊寅 9월 1일 돌아가시니 나라에서 조시(朝市)를 중지 시키고 안정공(安靖公)의 시호를 내렸다.
배위 경주이씨(慶州李氏)는 목사 반(牧使 蟠)의 따님으로 2남 4녀를 두었다. 아들 정문(井汶)은 만호(萬戶)요 원문(源汶)은 사직(司直)이며, 사위는 판관 선산류지신(判官 善山柳之信) , 현감 우봉이기(縣監 牛峰李圻) , 만호 진주강지해(萬戶 晋州姜之海) , 주부 남분(主簿 南?)이다.
묘소는 광주 영장산(廣州 靈長山)으로 알러오나 실전하였다.
후손은 청주(淸州) , 춘성(春城) , 홍천(洪川) , 이천(利川) , 평산(平山)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朝鮮王朝實錄, 輿地勝覽, 嘉靖譜
[입력: ryuj 09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