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건영 (柳健永)

류건영(柳健永), 석전공(石田公), Ryu, Geong-Yeong, 생몰년:1881-1897, 세:30.
高宗朝 孝行, 左相公派, 자 삼보(三甫).

문성군 수(文城君 洙)의 3자 서흥부사 계손(瑞興府使 季孫)의 14대손이요, 간진현감 몽호(康津縣監 夢虎)의 10대손이요, 흥추(興鄒)의 장자로 순조(純祖) 31년 辛卯 6월 18일에 연기(燕岐)에서 태어났다.
5세에 부친을 여의었는데 곡읍(哭泣)의 절차를 한결 성인과 같이 행하니 염빈(殮殯)과 장제(葬祭)를 족친(族親)들이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였다.
홀로 계신 모친을 효성으로 섬겨 숙수(菽水)의 공양과 의복)衣服)의 준비를 반드시 뜻에 맞추었으며, 모친께서 일찍 병환이 있어 시약(侍藥)으로 효험을 보지 못하였는데 하루는 의원(醫員)이 말하기를 『장어회(長魚膾)를 복용하면 가희 낳으리라』하였다. 때에 겨울이라 어름이 얼어 손을 대지 못하겠으므로 공이 몸소 도끼를 가지고 구멍을 깨어 마침 오미어(五尾魚)를 얻어 시약(試藥)한 결과 효험을 얻었다.
그 후 상을 당하여 제반 절차를 전상(前喪)보다 더욱 독실히 행하고, 양친(兩親)을 합부하여 겨울에 눈이오면 새벽에 나가 비로 쓸고, 여름에 비가 내리면 밖에 서서 날이 개이기를 기다리되 복제(服制)를 마친뒤에도 여전하였다. 이에 고을 유림(儒林) 수백인이 관청에 천장(薦狀)을 올렸으나 포상(褒賞)을 얻지 못하였다.
고종(高宗) 34년 丁酉 11월 20일 졸하니 향년 67세로 연기군 서면 성재리 남록 삼치(燕岐郡 西面 性齋里 南麓 三峙)의 선공(先公) 묘소 계하 곤좌(坤坐)에 묻히셨다.
배위 부안임씨(扶安林氏)는 희진(希震)의 따님인데 3남을 두어 장자 인철(寅哲)은 문과(文科)에 급제, 비서원승(秘書院丞)을 지내고, 2자 인필(寅弼)은 통신원주사(通信院主事)를 지내고, 3자는 인길(寅吉)이다.
자손이 연기군 서면 성재리(燕岐郡 西面 性齋里)에 세거하고 있다.

※追先錄.

[입력: ryuj 09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