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상 (柳基常), 통상공(統相公), Ryu, Gi-Sang, 생몰년: 1787-1852, 세: 30
憲宗朝 武將, 忠景公派, 자 계항(季恒).
송암 관(松庵 灌)의 11대손이요, 통어사 문식(統禦使 文植)의 손이요, 증호조참판 굉(贈戶曹參判 浤)의 2자로 정조(正祖) 11년 丁末 3월 13일 장단(長湍)에서 태어났다.
순조(純祖) 7년 丁卯(1807)에 21세의 나이로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여러 고을 수령(守令)을 역임하고, 헌종(憲宗) 2년 丙申(1836) 3월에 익종대왕(翼宗大王)의 태실 가봉(胎室 加封)시에 감역겸도차사원(監役兼都差使員)을 능히 수행하여 가자(加資)의 특전을 받았다. 8년 壬寅(1842) 8월 우포도대장(右捕盜大將)에 승진(陞進)하고 이어 총융사(摠戒使)로 전직되었다가 10년 甲辰(1844) 7월에 다시 우포도대장이 되었더니 이듬해 12월 또 금위대장(禁衛大將)으로 옮기었다. 15년 己酉(1849) 8월 29일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로 부임하여 철종(哲宗) 2년 辛亥(1851) 8월 26일 교체되어 좌포도대장에 전직되었다.
공께서 무장(武將)이었으나 또한 문사(文詞)가 뛰어나고 필한(筆翰)이 물흐르듯 하였으며, 청백하게 정사(政事)를 행하여 명성이 일세에 떨쳤다.
3년 壬子 6월 26일 졸하니 향년 66세로 장단 신경천 소학동 선영(長湍新慶川 巢畿洞 先瑩)에 모시었다가 후에 송곡 갑좌(松谷 甲坐)로 면례(緬禮), 부인과 합폄하였다.
배위 평산신씨(平山申氏)는 부사 광로(府使光輅)의 따님인데 아들은 없이 따님 둘을 두었다. 이로써 연산 삼전리(連山 蔘田里)에 세거(世居)하는 공의 족제 기돈(族弟基燉)의 장자 인환(寅煥)을 맞아 계자하고, 따님은 방어사(防禦使) 양천허 엽(陽川許 燁)과 수사(水使) 평양조희직(平壤趙羨稷)에게 출가시켰다.
인환의 초휘는 환(皖)이요, 자는 치조(穉照)인데 순조(純祖) 31년 辛卯(1831)생으로 헌종(憲宗) 15년 己酉(1849)에 장용위(壯勇衛)에 소속되어 있던중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여러 관직을 거쳐 방어사(防禦使)로 재직중 고종(高宗) 3년 丙寅(1866) 9월, 불란서(佛蘭西)의 선박이 강화도(江華島)에 들어와 방화(放火)와 약탈을 일삼자 조정에서 경기도(京畿道) 일원에 무신(武臣)들을 배치, 포진(包陣)시켰는데 이때 공께서 파주목(坡州牧)을 담당하여 그들의 상륙(上陸)을 저지하였다. 그 공으로 파주목사(坡州牧使)에 제수되고 이듬해 9월 포상(衰賞)을 받았으며 6년 己巳(1869) 5월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에 승진되었다. 17년 庚辰(1880)에 졸하니 향년 40으로 파주군천현면삼성당리 해좌(坡州郡泉峴面三星堂里 亥坐)에 모셔졌다. 자손은 경기도 및 서울에 살고 있다.
※ 類鮮王朝實錄. 丙寅譜.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