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광국(柳匡國), 매계공(梅溪公), Ryu, Gwang-Gook, 생몰년:1722-1797, 세:26
正視朝文臣. 忠景公派, 자 정이(正而). 호 매계(梅溪).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小尹 漢生)의 11대손이요, 음죽현감 이(陰竹縣監 珥)의 5대손이요, 증호조참판 영복(贈戶曹參判 榮複)의 장자로 경종(景宗) 12월27일 천안 목천(天安 木川)에서 태어났는데 천품이 인후(仁厚)하고 학식이 고명(高明)하여 효우(孝友)의 행실이 뛰어났었다.
영조(英祖) 26년 庚午(175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38년 壬午(1762) 11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재직중 부제학 김시찬(副提學 金時粲)의 연사지죄(言事之罪)를 용서해 주도록 청하다가 도리어 주상의 진로(震怒)를 사서 멀리 온성(穩城)으로 유배, 이듬해 2월 방면되어 용강현령(龍岡縣令)으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푸니 읍민들이 비를 세워 칭송하였다. 내직으로 들어와 이조정랑(李朝正郞), 장악원정(掌樂院正), 군자감정(軍資監正)을 거쳐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재직중 50년 甲午(1774) 10월,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정조(正視) 13년 己酉(1789) 5월 사가원 헌납(司諫院 獻納)으로 있으면서 또 탄핵을 받고 물러났다가 얼마 후 복직,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만년에 온양 매곡(溫繼 梅谷)으로 퇴거, 시서(詩書)를 즐기다가 21년 丁巳 정월 13일 졸하니 향년 76세로 천안 선영 간좌(天安 先榮 艮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선산김씨(善山金氏)는 수복(守複)의 따님인데 무후하고, 경주김씨(慶州金氏)는 무과 봉의(鳳儀)의 따님인데 1남 2녀를 두어 아들 시명(蓍命 : 초명 世?)은 통덕랑(通德郞)이요, 따님은 전의 이윤백(全義 李潤白), 연일 정재홍(延日 鄭在弘)에게 출가하였다.
후손은 연기군 서면 성재리(燕岐郡 西面 性薺里), 공주군 정안면 인풍리(公州郡 正安面 仁風里)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 朝鮮王朝實錄, 丁已譜.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