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광선 (柳廣善)

류광선(柳廣善), 매돈거사(梅墩居士), Ryu, Gwang-Seon, 생몰년:1616-1684, 세:23
肅宗祖 學者. 中門祇候使公派, 자 여거(汝居). 호 매돈(梅載)

제교 희량(霽橋希亮)의 손이요. 탁영정 두립(濯纓亭 斗立)의 아들로 광해군(光海君) 8년 丙辰 10월 13일, 시흥 안산(始興安山)에서 태어났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준수하여 겨우 말을 하면서부터 시(詩)를 외우더니 10여세에 이미 속문(屬文)에 능하였다.
13세에 가화(家禍)를 만나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섬기되 효성이 지극하여 언젠가 모친께서 안질(眼疾)로 고생하시는데 파리가 많은지라 공께서 파리채를 잡고 삼하(三夏)를 하루도 쉬지 않고 날리었다. 항상 말하기를『재앙을 만난 가문의 자제로서 글을 못하면 어찌 다른 사람과 대할 수 있으리요.』하고, 마침내 많은 책을 읽기 수년에 문장이 크게 성취되었다. 이로부터 고금의 서적을 구입하여 일실(一室)에 가득히 싸놓고 주야로 송독(誦讀)하여 마침내 문장(文章)의 대가(大家)로서 수백편의 시문을 저술하였다. 이에 선비들이 외우고 사모하여 금옥(金玉)같이 귀히 여겼으며 미수허 목(眉榮許 穆)은 공을 일러 『좋은 교우(交友)라』하였다.
숙종(肅宗) 10년 甲子 10월 29일, 향년 69세로 돌아가시어 묘소는 시흥군 군자면 능길리 표좌(始興郡 君子面 陵吉里 卯坐)에 모셔졌다.
 공의 유고(遺稿) 6권이 있어 희암 채쟁윤(希庵蒙彭胤)이 3책으로 간행하였는데, 서문(序文)은 판서 민창도(判書 閔昌道)가, 발문(跋文)은 성호 이 익(星湖李 溜)이 짓고, 묘지(墓誌)는박천 이 옥(惰次 李 沃)이 지었다.
배위 해주정씨(海州鄧氏)는 진사 인(澾)의 따님으로 3남을 두어 영구(永龜)요, 응구(應龜)요, 정구(貞龜)는 재종숙 시선 (再從叔 是善) 후로 출제하였다. 서출에 2남 6녀가 있어 아들은 명구(明龜)와 익구(益龜)요, 사위는 방이성(方履成) , 안후달(安後達) , 안처항(安處恒) , 김문필(金文弼) , 이 승(李 昇) , 박중흠(朴重欽)이다.
후손은 시흥군 군자면 거모리(始興郡 君子面 去毛里)에 세거하고 있다.
※ 墓詰. 人物考. 號譜.

[입력: ryuj 0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