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천(柳擎天), 경원공(慶源公), Ryu, Gyeong-Cheon, 생몰년:1543~I594, 세:23
宣祖朝 武將, 左相公派, 자 중여(重汝).
승문원박사 경인(承文院博士 敬仁)의 현손이요, 훈련주부 희량(訓鍊主簿 熙良)의 아들인데 체격이 장대하고 힘이 보통에 벗어나 용맹(勇猛)이 이를 데 없었다.
선조조(宣祖祖)1570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고령첨사(高靈僉使)로 재직중 임진왜란을 만났는데 동년 7월에 왜장 가등청정 (倭將 加藤淸正)의 군대가 함경도(咸鏡道)를 휩쓸어 국경(國境)에 이르자 회령(會寧)고을 아전(衛前)인 국경인(鞠景仁)이 각 고을의 불평분자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 그 곳에 피난 와 있던 왕자(王子) 임해군(臨海君) , 순화군(順和君) 및 재신(宰臣) 김귀영 (金貴榮) , 황정욱(黃廷彧)등을 포박하여 가등청정(加藤淸五)에게 넘기었다. 이 때 순변사 이영(巡邊使 李瑛) , 부사 문용원(府使 文夢轅)이 놀라 어절 줄을 모르고 있는데 공께서 순변사에게 말하기를 『국경인(鞠景仁)이 반란을 일으켜 본부(本府)의병사로 그를 따르는 자가 절반에 이르나 모두 그 심복(心腹)은 아니니 이공(李公)께서 군사를 정비하여 경비를 엄히 하면, 내가 가서 경인(景仁)을 달래어 군병(軍兵)을 해산하게 할 것이요, 만약 듣지 않으면 그의 머리를 베어 여러 추종자(追從者)를 효유(曉諭), 해산토록 하겠으니 공은 지금부터 그들을불러 모아 항복(降服)을 받으면 자연히 평정(平定)될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나 이영(李瑛)은 본래 용열하고 나약한 사람으로서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하기를 『삼가 그런 말을 마시요』하였다. 경인(景仁)이 그 꾀를 몰래 듣고 사람을 시켜 군관(軍官)중에 건장(健壯)한 자를 잡아 다 죽인 후 경계를 삼엄히 하였으나 그후 북평사 정문부(北評事 鄭文孚)의 격문(檄文)을 받은 회령의 유생(儒生), 신세준(申世俊)과 오윤적(吳允迪)등에게 잡혀 참살당하였다.
동년 9월에 왜군(倭軍)이 길주(吉州)에서 패한 후 성내(城內)로 들어가 성을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이 때 종성부사 정현룡(鐘城府使 鄭見龍) , 경원부사 오응태 (慶源府使 吳應台) , 고령 첨사 류경천(高靈僉使 柳擎天)이 각기 거느리고 있던 부하를 합쳐 삼천여명의 대군으로 길주성(吉州城)을 포위하여 연일 접전(接戰)하였다. 이에 왜적 사백여명이 성위에 올라 죽음을 무릅쓰고 대항하여 철환(鐵丸)과 사시(射矢)로 피아(彼我)간에 모두 큰 손상을 입고 대치하였다 .
공께서 좌위장(左衛將)으로 길주 고을 병사 김국신(金國信)과 함께 먼저 접전하고, 한편으로 삼위(三衛)의 군병이 일시에 쳐들어가니, 마침내 왜적이 도망하는지라 계속 추격하여 백여급의 목을 베고 큰 전과를 올렸다. 이로써 승전(勝戰)의 장계(狀啓)가 행재소(行在所)에 달하자 선조(宣祖)께서 공을 인견(引見)하시고 눈물을 흘리면서 포상과 아울러 경원부사(慶漂府使)에 특제(特除)하시었다.
그후 석령(石嶺) , 장평(長坪) , 쌍개포(雙介浦) , 백탑(白塔)등지의 전투에서 모두 전과(戰果)를 올리었다.
癸巳(1593) 윤 11월에 사간원(司諫院)에서 공의파직(罷職)을 청하였는데 주상께서, 『왜적과 대치하고 있는 시기에 수령을 경홀하게 체임시킴은 불가하다. 』하시고 윤허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간원에서 거듭 파직을 주청함으로 주상께서 다만 추고(推考)하도록 명 하였다.
이듬해 관아(官衙)에서 돌아가시니 향년 42세였다. 주상께서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贈職)함과 아울러 경성(鏡城)에 사우(祠宇)를 건립, 동사(同事)했던 여러 사람과 함께 향사(享祀)토록 하고 창렬사(彰烈祠)로 사액(賜額)을 내렸다.
후에 길주에 승전비(勝戰碑)가 세워졌는데 부제학 곤륜 최창대(副提學 崑崙 崔昌大)가 비문을 지었다.
배위 수원백씨(水原白氏)는 감정 의홍(監正義弘)의 따님으로 1남을 두어 충진(忠進)은 무과(武科)에 급제 주부(主簿)를 지내었다.
묘소는 부평 당악 선영(富平 棠岳 先塋)에 모셔있으며 공의 행록은 자겸와 류대원(自慊窩 柳大源)이, 묘비문은 용서 류기일(龍西 柳基一)이 각기 지었다.
후손이 연천군 동면 좌찬리(蓮川郡 來面 左贊里) , 화천군 상서면 마현리(華川郡 上西面 馬峴里)에 세거하였으나 지금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무자보, 朝鮮王朝實錄. 自慓潔集. 北關誌.
[입력: ryuj 14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