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선 (柳敬先)

류경선(柳敬先), 병사공(兵使公), Ryu, Gyeong-Seon, 생몰년:1519-1575, 세:19
宣祖朝 武將. 左相公派, 자 흠중(欽仲)

증좌찬성 종(贈左贊成 淙)의 3자 증사복사정 사충(贈司僕寺正 思忠)의 증손이요, 진사 증호조참의 진(進士 贈戶曹參議 津)의 손이요, 증호조참판 계윤(贈戶曹參判 繼胤)의 아들로, 중종(中宗) 14년 己卯에 포천(抱川)에서 태어났다.
38년 癸卯(1543)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명종조(明宗朝)에 낭장(郎將).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를거쳐 웅천현감(熊川縣監). 제주판관(濟州判官). 양산군수(梁山郡守)를 지내면서 청렴과 근검으로 백성을 다스려 치적(治績)이 드러났었다.
선조(宣祖)2년 己巳(1569)에 제용감첨정(濟用監僉正)을 거쳐 한성서윤(漢城庶尹)에 옮기고, 이듬해 경원부사(慶源府使)에 제수되었다가, 6년 癸酉(1573)에 충청수사(忠淸水使)에 전임되고, 이듬해 회령부사(會寧府使)로 나가 바로 함경북도병사(咸鏡北道兵使)로 전임하였다.
공은 천품이 아름답고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였으며 경사(經史)를 두루 읽어 사리(事理)에 통달하였다. 친구를 성의로써 대하고 처첩(妻妾)을 예로서 거느렸으며, 공직(公職)에 있어서는 근실하고 몸가짐은 심히 근엄하여 청렴과 근검으로 세상에 일컫었다.
선조(宣祖) 8년 乙玄에 57세로 돌아가시니 묘소는 포천 화산 침방리 선영하을좌(抱川 花山 沈坊里 先塋下 乙坐)에 모시었고 삼종제 우복당 전(愚伏當 琠)이 묘갈명을 지었다.
배위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이성군 존광(尼成君 存光)의 따님으로 무육(無育)하고 묘소는 공의 묘소에 합부하였다.
삼종제 우복당 전(愚伏當 琠)의 2자 진사 유서(進士 裕緖)를 맞아 계자(系子)하였다. 후손은 포천군 가산면 금현리(抱川郡 加山面 金峴里)에 세거하고 있다.
※朝鮮王朝實錄, 董碣銘

[입력: ryuj 0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