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하 (柳河)

류하(柳河), 문산군(文山君), Ryu, Ha, 생몰년:1415-1474, 세:16
世祖朝 功臣, 府尹公派

송화현감 흡(松禾縣監 治)의 5자로 태종(太宗) 15년 乙未에 고양(高陽)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궁마(弓馬)를 즐기어 무술(武術)을 익힘을 업(業)으로 삼았다.
세종(世宗) 21년 己未(1439)에 음사로 내금위(內禁衛)에 배속되고 누차 승진하여 선략장군(宣畧將軍)에 이르렀더니 단종(端宗) 원년 癸酉(1453)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동년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을 쫒아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등을 제거하는데 참여하여 수충협찬정난공신(輸忠協贊靖難功臣) 2등에 책록되고 이듬해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올랐다.
세조(世祖) 원년 乙亥(1455) 정월에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조정에서 관곽(棺槨) 및 쌀과 팥등 10석과 종이 40권을 부조(賻助)하고 얼마 후 전답(田畓) 150결과 노비(奴婢) 15인, 말 1필, 백은 25량, 옷 1습을 하사하였다. 아울러 가선대부 평안도도절제사(嘉善大夫 平安道都節制使)에 제수되고 문산군(文山君)에 봉해졌다.
4년 戊寅(1458) 2월 인순부윤(仁順府尹)에 제수되어 6월에 사은사(謝恩使)로 명(明)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6년 庚辰(1460)에 가정대부 상호군(嘉靖大夫 上護軍)에 승진되고 10년 甲申(1464)에 자헌대부 지중추원사(資憲大夫 知中樞院事)에 승진되고, 이듬해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승진되었다.
성종(成宗) 3년 任辰(1472) 2월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승진되었더니 5년 甲午 6월 24일 돌아가시니 향년 60이었다.
조정에서 예관(禮官)을 보내어 치제(致祭)와 아울러 예장(福葬)을 명하고, 충양공(忠襄公)의 시호(諡號)가 내렸는데 시법(諡去)은 위신봉상왈충(危身奉上曰忠) , 인사유공왈양(因事有功曰襄)이었다.
배위 인천이씨(仁川李氏)는 부사 활(府使 活)의 따님으로 1남을 두었으니 효손(孝孫)이다.
공의 7대손 대까지 광주(廣州)에서 상당히 살았는데 그 후 절손(絶孫)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며 묘소마저 실전하였다.
※朝鮮王朝實錄.

[입력: ryuj 09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