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함형(柳咸亨), 참판공(參判公), Ryu, Ham-Hyeong, 생몰년:1570-?, 세:20
仁祖朝 文臣 左相公派, 자 응길(應吉).
문원군 희양공 사(文原君 僖襄公 泗)의 5대손이요, 순창군수 철손(淳昌郡守 哲孫)의 현손이요, 사정 함(司正 涵)의 증손이요, 충의위 팽조(忠義衛 彭祖)의 손이요, 예빈시주부 민(禮賓侍主簿 珉)의 3자이다.
선조(宣祖) 3년 庚牛생으로 27년 甲牛(1594) 별시문과(別時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田籍)을 거쳐 34년 辛丑(1601)에 해미현감(海美縣監). 봉상시주부(奉常侍主簿)를 역임하였다. 39년 丙牛(1606)에 금성현령(錦城縣令)으로 나갔더니 후에 광해군(光海君)의 집정(執政)이 어지러움을 보고 사직하였다.
인조(仁祖) 등극후에 판관(判官)에 제수되어 3년 乙丑(1625) 정월 상소(上疏)를 올려 원종(元宗)을 추숭(追崇)할 것을 청하였으나 승정원(承政院)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얼마후 관직에서 물러나 돌아가시니 양주 광석 상장산 건좌(揚州 廣石 上將山 乾坐)에 묻히셨다.
배위 평산신씨(平山申氏)는 원인(元仁)의 따님으로 1남을 두었으니 계(契)이다. 계(契)는 진주정씨(晋州鄭氏) 첨지 승지(僉知 承之)의 따님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으니 장자는 중성(重星)이며, 따님은 무과 진천송서구(武科 鎭川宋瑞龜)에게 출가하였다. 공의 현손(玄孫)대에 내려가 무후(無後)하였다.
※ 朝鮮王朝實錄, 國朝榜目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