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헌민(柳獻民), 증참판공(贈參判公), Ryu, Heon-Min, 생몰년:1536-1618, 세:20
光海朝 行誼, 中門祇候使公派.
중랑장 중의(中郞將 仲宜)의 6대손이요, 부사직 종수(副司直 宗壽)의 아들로 중종(中宗) 31년 丙申 12월 26일생인데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고 글재주가 출중하더니 장성해서는 충후(忠厚)한 장덕(長德)으로 일컫었다.
음사(蔭仕)로 참봉(參奉). 습독(習讀). 사과(司果). 호군(護軍)을 지내고 만년에 고향 진천(鎭川)으로 돌아와 판서 신집(判書 申集)으로 더불어 상산기로회(常山耆老會)를 조직 춘추로 강신(講信)하고 향중의 자제들을 모아 남전여씨향약(藍田呂氏鄕約)을 가르쳤다. 광해군(光海君) 10년 戊午 3월 6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83세로 진천 문봉리 동곡(鎭川 文鳳里 東谷) 자좌(子坐)에 모셔졌다.
공께서 돌아가시자 시암 조상우(時庵 趙相愚), 회헌 이정영(悔軒李廷英)등이 만사(挽辭)를 지어 애도하였으며, 후에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되었다.
배위 인천이씨(仁川李氏)는 증참의 응진(贈參議 鷹震)의 따님인데 그와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아들 희문(熙門)은 선교랑(宣敎郞) 이요, 기문(起門)은 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을 지내고, 흥문(興門)은 선교랑이며, 사위는 생원 경주김천추(生員 慶州金天樞), 감역 양주조상순(監役 楊州趙相舜)이다.
후손은 주로 진천군(鎭川郡)에 집단세거하고 충청남북도(忠淸南北都)에 흩어져 살고 있다.
※ 家牒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