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柳羲), 장령공(掌令公), Ryu, Hui, 생몰년 :1370-1421, 세:13, 掌令公派祖.
太祖朝 蔭仕, 초명 의(義), 자 홈보(欽甫), 호 남정(南亭).
공은 상서 언침(尙書 彦沉)의 5대손이요, 군사 안우(郡事 安祐)의 아들로 고려 공민왕(恭愍王) 19년 庚戌에 태어났다.
일찍이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이어 종형(從兄) 하정 관(夏 亭 寬)에게 학문을 익히어 도의(道義)와 성리(性理)로서 수신(修身)의 대요(大要)를 삼고, 경재 하연(敬齋 河演), 춘정 변계량(春亭 卞季良)으로 더불어 종유하여 명망이 높았다.
이로서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제수되었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가족을 거느리고 남하하여 초계 성산(草溪 城山)에 정착하였다. 이로부터 남정(南亭)이라 자호하고 산수를 즐기면서 후생 교육으로 여생을 마쳤다.
공의 복거시(卜居詩)에
『嶠南風俗最庬淳............영남의 풍속이 이다지도 순박하니
得處吾生自保眞............내 이곳에서 참 삶을 얻었도다.
雨露乾坤閑自在............비와 이슬이 천지에 한가롭고
江山面面總和春............강산은 곳곳마다 화창한 봄이로다』
조선 세종(世宗) 3년 辛丑에 향년 52세로 돌아가시니 초계 성산(草溪 城山) 후록 옥전 해좌(玉田 亥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초계 정씨(草溪 鄭氏)는 상호군 광계(上護軍 光繼)의 따님으로 2남 2녀를 두어 아들 저(渚)는 직장(直長)이요, 맹지(孟智)는 현감(縣監)이며, 사위는 호군 밀양 박겸형(護軍 密陽 朴謙亨)과 현감 원주 이족(縣監 原州 李足)이다.
공의 행장은 방후손 승기(傍後孫 昇基)가 짓고, 묘갈명은 판서 안동권대긍( 判書 安東 權大肯)이 지었다.
후손들이 초계에 백산사(柏山祠)를 건립하여 공의 영정(影幀)과 위패(位牌)를 봉안하고 매년 향사하고 있다. 후손은 주로 초게에 세거하고 있다.
아들 맹지(孟智)의 자는 명숙(明叔)이요, 호는 법성정(法聖亭)인데 어려서부터 가정교훈을 독실히 익혀 일찍이 속문(屬文)에 능하고 경전(經傳)을 통하였다. 음사(蔭仕)로 회덕현감(懷德縣監)을 지냈는데 청렴하게 백성을 다스려 칭송이 자자하엿다. 얼마 후 관직을 버리고 초계로 내려가 성산 아래 황강위에 정자를 지어 법성정(法聖亭)이라 이름하고, 후진들을 가르쳐 문하에서 성취한 분이 많았다. 공은 매일 일찍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가묘(家廟)를 배알한 후 친산(親山)을 성묘하였는데 심한 병이 아니면 풍우(風雨)와 한서(寒暑)에도 폐하지 않고 가법(家法)이 엄연하였다.
※ 行狀, 墓碣銘.
[입력: ryuj 09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