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柳忍), 백암공(白菴公), Ryu, In, 생몰년:?-?, 세21
宣祖朝 儒賢. 忠景公派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少尹 漢生)의 6대손이요 진안현감 여강(鎭安縣監 如岡)의 2자로 광주 유등곡(光州 柳等谷)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영민하고 효우가 돈독하더니 일찌기 일재이 항(一齋 李 恒) 선생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독실히 익히고 한편 건재 김천일(健齋 金千鎰)을 종유하여 명망이 당시에 울연하였다. 명종(明宗) 11년 丙辰(1756)에 생원(生員)에 급제하여 태학(太學)에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심혈(心血)을 기울였다.
선조(宣祖) 25년 壬辰(1592) 왜란(倭亂)에 적병(敵兵)을 만나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꾸짖다가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다.
배위 충주박씨(忠州朴氏) 민제(敏齋)의 따님과, 풍산홍씨(豐山洪氏)가 계셔, 2남 2녀를 두었다.아들은 안경(安敬)과 준경(遵敬)으로 모두 무후하고, 사위는 조 무(超 懋)와 홍 원(洪 遠)이다.공의 자손이 절손(絶孫)되어 묘소도 전하지 않으며, 다만 공의 행적이 일재문인록(-齋門人錄)과 호남절의록(湖商節義錄)의 조카 수사 지경(水使 持敬)의 주(註)에 간략히 기재되어 있을 따름이다.
※ 典故大方儒賢篇. 湖南節義錄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