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자명 (柳子明)

류자명 (柳子明), 우근공(友槿公), Ryu, Ja-Myeong, 생몰년: 1894-1985, 세: 29

충경공 후손(後孫), 父 種根, 보명 흥식(興湜), 字 계청(季淸), 호 우근(友槿), 충주(忠州) 출생
독립운동가.
국권상실(國權喪失) 이후 중국에 망명, 1919년 11월 의열단에 가입, 의열단장 김원봉의 비밀참모로써 국내외 일본인과 친일파(親日派)의 제거작업에 크게 기여하였다.
1944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제5차 개헌에 앞서 조소앙(趙素昻), 최동오(崔東旿), 신영삼(申榮三) 등과 7인 헌법기초위원을 맡아 일하였다. 그는 이때를 제외하고는 표면에 나서 활동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일제의 수괴급을 암살하거나 일본의 공공기관을 파괴하는 작전의 배후 참모로서의 역할만을 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려고 자유중국까지 왔으나, 6·25전쟁이 일어나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서 대학 교수생활을 하면서 윈난[雲南] 고원지대에서 최초의 특수 벼 재배에 성공하여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년에 후난농업대학 원예학과 명예주임으로 중국 원예학회 명예 이사장에 추대되었다.
저서로 자서전《한 혁명자의 회고록》이 있다. 1991년 4월 건국훈장애국장이 추서되었다.
配 덕수 이란영 父 敏一
配 중국 劉則忠
墓 대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
※ 무자보,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입력: ryuj 1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