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잠 (柳潛)

류잠(柳潛), 판서공(判書公), Ryu, Jam, 생몰년:1509-1576, 세:19
宣祖朝 文臣. 中門祇候使公派, 자 사소(士昭)

중랑장 중의(中郞將 仲宜)의 5대손이요, 돈녕부부정 수천(敦寧府副正 壽千)의 2자로 중종(中宗) 4년 己巳 6월 24일에 태어났다.
일찍이 생원에 급제하고 35년 庚子(154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明宗) 원년 丙牛(1546) 11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이듬해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교리(敎理)를 지내고, 3년 戊申(1548) 2월 도로 지평(持平)에 전임되었다가 곧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 옮기었다. 평안도 암행어사(平安道 暗行御史)로 나가 굶주리는 백성들을 진휼(賑恤)하고 돌아와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거쳐 7년 壬子 (1552) 4월 집의 (執義)에 승진하고 이어 홍문관부응교(弘文館副應敎).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상의원정(尙衣院正)등을 두루 지냈다.
9년 甲寅(1554) 9월 경복궁(景福宮)의 수리에 노고가 많음으로써 당상(堂上)에 승진하고, 이듬해 8월 전주부윤(全州府尹)으로 나갔다가 13년 戊午(1558) 2월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옮겼더니 이듬해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발탁되었다.
15년 庚申(1560) 5월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재직중 성절사(聖節使)로 명(明)나라에 갔다가 돌아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오르고 17년 壬戌(1562) 정월에 병조참의(兵曹參議) 10월에 현조참판(刑曹參判)에 제수되었다.
19년 申子(1564)에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나갔다가 이듬해 중종비(中宗妃)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상(喪)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수릉관(守陵官)에 임명되어 1급 승진의 특전을 입고, 동시에 아들 자신(自新)에게 태릉참봉(泰陵參奉)이 제수되었다.
선조(宣祖) 즉위 丁卯(1567) 11월에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제수되고 5년 壬申(1572)에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전임되었더니 7년 甲戌(1574)에 12월에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다.
9년 丙子 10월 16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68세로 시흥군 안산 광곡 목실리 인좌(始興郡 安山 廣谷 木實里 寅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하동정씨(河東鄭氏)는 증참판 승렴(證參判 承濂)의 따님으로 2남을 두어 장자 자신(自新-광해군 장인)은 한성판윤(漢城判尹)으로 국구(國舅)가 되어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에 책봉되었으며, 2자 덕신(德臣)은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되었다.
※朝鮮王朝實錄

[입력: ryuj 0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