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적(柳績), 반곡공(盤谷公), Ryu, Jeok, 생몰년: ?-?,세:16
成宗朝 蔭仕. 忠景公派, 호 반곡(盤谷).
한성판윤 경생(漢城判尹 京生)의 3남으로 양주(楊州)에서 태어났다.
자품(資稟)이 온후하고 기우(器宇)가 총명하더니 문음으로 출사하여 진위현령(振威縣令)을 지냈는데 정령(政令)을 엄정하고 명백히 행하여 선정(善政)을 베푸니 이속(吏屬)들은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고 백성들은 생업에 즐겁게 종사하며 모두 어진 수령(守令)이라고 일컫었다.
중년에 시국(時局)이 날로 어지럽자 벼슬을 그만두고 경상도(慶尙道)로 내려가 안의 석반동(安義 石盤洞)에 터를 잡아 살면서 그 지명을 따서 반곡(盤谷)이라 자호(自號)하고 조용히 여생을 즐기었다.
조정에서 수차 관직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노경(老境)을 즐기니 사람들이 강동 순로(江東 蓴鑛)와 심양 운조(潯陽 雲鳥)의 고사(故事)에 비유하였다.
배위 서원이씨(酉原李氏)는 좌의정 거이(左議政 居易)의 손녀요 목사 길(牧使 情 )의 따님인데 묘소는 함안군 안의면 봉산리 석반동 간좌(咸安郡 安義面 鳳山里 石盤洞 艮坐)에 합부로 모셔있다.
5남 2녀를 두어 사직 효손(司直 孝孫) , 사직 효남(司直 孝男) , 부사정 효제(副司正 孝悌) , 호군 순손(護軍 順孫) , 사직 정손(司直 正孫)과 양승문(梁承文) , 김민(金旻)은 그 아들과 사위이다.
의정부사인 함양오상문(議政府舍人 咸陽吳尙文)이 공의 행장(行狀)을 지었다.
당시 공께서 심은 소나무로 이른바 반송(盤松)이 근년까지 보존되었는데 워낙 오래되어 수년 전에 없어졌다.
※行狀. 庚申譜
[입력: ryuj 09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