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서 (柳廷緖)

류정서(柳廷緖), 농수공(聾?公), Ryu, Jeong-Seo, 생몰년:1664-1737, 세:24
英祖朝 學行. 忠景公派, 자 몽경(夢卿), 호 롱수(聾?).

율봉도찰방 형장(栗峰道察訪 亨長)의 7대손이요, 현풍현감 인수(玄風縣監 仁壽)의 손이요, 통덕랑 집(通德郎輯)의 장자로 현종(顯宗) 5년 甲辰에 목천(木川)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어질어 학업에 부지런하고 행의(行誼)가 독실하였으며 문달(聞達)을 꾀하지 않고 의창(義倉)을 설치하여 가난한 종족을 구제하고 향약(鄕約)을 실시하여 고을의 예속(禮俗)을 순화하는데 진력하였다. 한편 강당(講堂)을 세워 자제들은 물론 향리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니 역천 송명홈(機泉宋明缺)선생이 그 액호(額號)를 청류강사(淸流講舍)라 지어 주었다.
또한 본래 산수를 사랑하여 동쪽으로 금강산(金剛山) , 서쪽으로 백마강(白馬江)을 구경하고 그 근원과 깊숙한 유서를 더듬어 이르는 곳마다 정경을 읊고 우울한 마음을 풀어 유고(遺稿)및 창수록(唱酬錄)이 전하고 있다.
만년에는 절곡 김시관(節谷 金時觀)형제와 당진현감(唐津縣監)을 지낸 황만(黃萬)으로 더불어 기로계(耆老契)를 같이 닦아 스스로 노년을 즐기고 『聾?』라 자호하였다.
 영조(英禮) 13년 -豊 4월 24일에 졸하니 향년 74세였다.
배위 창념성씨(昌寧成氏)는 현(?)의 따님이요, 초계변씨(草溪卞氏)는 동도(東道)의 따님인데 묘소는 정랑봉 좌록 임좌(正郎峰 左麓 壬坐)에 3위 합부(含祔)로 모셔있고 부제학(副題學) 안동김경규(安東金敬圭)가 묘갈명을 지었다.
2남 3녀를 두어 아들 혼(混)은 영조(英視) 9년 癸丑(1733)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시서(詩書)를 잘하여 유고(過稿)가 있고, 온(溫)은 숙부 응서(應瑞)의 후로 출계하였으며, 따님은 청송심정옥(靑松沈延玉) , 이천서양우(利川徐陽遇) , 전주이영중(令州李英中)에게 출가하였다.
후손은 천원군 성남면 석곡리(天原訓 域南面 石谷里) 대정리(大井里)에 세거하고 있다.
※ 墓碣銘. 丁巳譜

[입력: ryuj 0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