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례(柳之禮), 목사공(牧使公), Ryu, Ji-Rye, 생몰년 :?-?, 세:14
文宗朝蔭仕, 文平君派.
상서 언침(尙書 彦沈)의 6대손이요, 전서 소(典書 沼)의 3자이다.
정종조(定宗朝)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문음(門蔭)으로 출사하여 세종(世宗) 13년 辛亥(1431)에 밀양부사(密陽府使)로 나가 백성을 잘 다스려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졌고, 19년 丁巳(1437)에 남원부사(南原府使)로 재직중, 이곳 광한루(廣寒樓)의 단청(丹靑)을 말끔히 단장하였다.
문종(文宗) 즉위 庚午(1450) 8월에 영접도감사(迎接都監使)로 나가 명(明)나라와의 교역(交易)에 크게 이바지하고, 동년 11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전임되었다. 원년 辛未(1451) 9월에 황주목사겸자성진관병마절제사(黃州牧使兼慈城鎭管兵馬節制使)로 나가 치적(治績)이 크게 드러났었다.
세조(世祖) 6년 庚辰(1460) 5월에 좌익 원종훈(佐翼原從勳)에 책록되었다. 곧바로 청주(淸州)로 돌아와 형제로 더불어 시부(詩賦)로 여년을 즐기었다.
배위 하동설씨(河東偰氏)는 판의금부사 인상(判義禁府事 仁相)의 따님으로 2남 2녀를 두었다.
아들 극공(克恭)은 옥천군수(沃川郡守)를 지냈고, 극경(克敬)은 청양현감(靑陽縣監)을 거쳐 통례문판관(通禮門判官)을 지냈으며, 사위는 하동 정맹순(河東 鄭孟孫)과 안산 김사온(安山 金思溫)이다.
묘소는 청원군 옥산면 수락동(淸原郡 玉山面 水落洞) 선영 북록 신좌(先塋 北麓 辛坐)에 쌍분으로 모셔 석의(石儀)가 갖추어 있다. 庚申(1920) 3월에 묘비를 세웠는데 묘표는 순천 박종한(順天 朴鐘漢)이 지었다.
후손은 청원군 오창면 양청리(淸原郡 梧倉面 陽靑里), 청주시 복태동(淸州市 福台洞), 보은군 산외면 산대리(報恩郡 山外面 山垈里)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朝鮮王朝實錄, 廣寒樓記, 墓表.
[입력: ryuj 09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