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柳濬), 총관공(摠管公), Ryu, Joon, 생몰년:1673-1753, 세:25
英祖朝 武將, 忠景公派, 자 원백(源伯).
충숙공 송암 관(忠肅公 松庵 灌)의 6대손이요 증호조판서 용빈(贈曹判崙 用賓)의 아들로 현종(顯宗) 14년 癸丑 정월 5일 장단 현내(長湍 縣內)에서 태어났다.
숙종(肅宗) 34년 戊子(1708)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김해부사(金海府使) . 장흥부사(長與府使)를 거쳐 영조(英祖) 3년 丁未(1727) 8월 충청수사(忠淸水使)에 승진하였더니 이듬해 역신(逆臣) 이인좌(字麟佐)의 반란에 적도(賊徒)들을 물리친 후 전함(戰艦)을 정비하여 변란(變亂)에 대처하니 나라에서 특별히 포상(衰賞)을 내리었다.
9년 癸丑(1733) 3월 경상도우병사(慶尙適右兵使)로 재직중 사헌부(司憲府)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22년 丙寅(1746) 3월 조정(朝延)에서 중뢰연(重牢婆)을 베풀어 공의 치적(治績)의 노고를 위로하였으며, 28년 壬申(1752)에 노전(老典)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部摠府都摠管)의 가자(加資)가 내리었다.
이듬해 癸酉 6월13일, 향년 81세로 돌아가시니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증직되였다.
배위는 정부인 완산이씨(貞夫人 完山李氏)로 통제사 성뢰(統制使 聖賚)의 따님인데 본래 의방(義方)을 알고 서사(書史)를 널리 해득하여 여지기(女知己) 3권을 지어 세상에 간행되었으며, 향년 84세로 공보다 1년 먼저 壬申 12월 18일 돌아가셨다.
묘소는 장단군 현내면 신경천 선영 좌록 을좌(長湍郡 縣內面 新慶川 先塋 左麓 乙坐)에 합폄으로 비석이 있다.
2남 1녀를 두어 아들은 세복(世復)과 세덕(世德)이요, 따님은 한종위(韓宗瑋)에게 출가하였다.
장남 세복(世復)은 경종(景宗) 壬寅에 무과에 급제, 남양부사(南陽府使). 장단부사(長湍府使). 전라도좌수사(全羅道左水使). 길주목사(吉州牧使)를 지냈으며, 차남 세덕(世德)은 영조(英祖) 戊申에 무과에 급제, 강릉부사(江凌府使)를 지냈는데 효우(孝友)가 출중하여 일찍 모친의 뇌종(腦腫)을 입으로 빨아 쾌유 하였으므로 유림(儒林)들의 천장(薦狀)이 있었다.
※ 朝鮮王朝實錄, 丁巳譜.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