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맹문 (柳孟聞)

류맹문 (柳孟聞), 참판공(參判公), Ryu, Maeng-Moon, 생몰년: ?-?, 세: 14,
世宗朝 文臣, 夏亭公派.

하정 관(夏亭 寬)의 장자이다.
태종(太宗) 원년 辛巳(1401)에 증광문과에 급제,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 이조좌랑(吏曹佐郞)을 거쳐, 12년 壬辰(1412) 2월에 횡천감무(橫川監務)로 나갔다가 임기를 마치고, 내직으로 들어와 예조정랑(禮曹正郎)으로 재임중, 15년 乙末(1415) 8월에 파직되어 수년 동안 집에 있었다.
세종(世宗) 9년 丁未(1427) 10월에 다시 임용되어 사간원좌사간(司諫院左司諫)으로 재임중, 양녕대군(讓寧大君)의 비위(非違) 사실과, 최자달(崔自達)의 상중(喪中) 탈복 전에 서용(敍用)되는 등의 불가함을 동료들과 연명 상소로서 극간하였다.
12년 庚戌(1430) 정월에 첨지총제(僉知摠制)에 제수되고 이어 예조(禮曹). 병조(兵曹) , 이조(吏曹)의 참의(參議)를 두루 거쳐, 이듬해 6월 중군총제(中軍摠制)에 옮겼다가 12월에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제수되었다.
14년 壬子(1432) 9월, 부친 하정공의 연세가 80이 넘었으므로, 공이 사직하고 물러나 봉양에 진력하더니 이듬해 5월, 부친상을 당하여 예제(禮制)에 쫒아 복제를 마치었다.
17년 乙卯(1435) 9월, 충주목사(忠州牧使)에 제수되어 임기를 마치고 집에 있더니, 26년 甲子(1444) 12월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제수되어 얼마 후 치사(致仕)하였다.
배위 남양홍씨(南陽洪氏)는 전서 기(典書 璣)의 따님으로 5남 2녀를 두어 아들 첨(瞻)은 판결사(判決事)요, 삼(贂)은 문과로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요, 기(?)요, 수(?)요, 이(眙)는 전구서령(典廐署令)이며, 사위는 안동김백손(安東金伯孫)과 감찰 경주김확(監察 慶州金確)이다.
묘소는 광주군 상도면 군흥동(廣州郡 上道面 群興洞) 자좌(子坐)에 쌍분으로 모셔있다.
※朝鮮王朝實錄, 嘉瑞譜

[입력: ryuj 09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