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몽필 (柳夢弼), 증판서공(贈判書公), Ryu, Mong-Pil, 생몰년: 1532-1598, 세:19
宣祖朝 行誼. 夏亭公派, 자 경훈(景勳)
예조참판 맹문(禮曹參判 孟閒)의 5대손이요, 증좌승지 용겸(贈左承旨 用謙)의 4자로 중종(中宗) 27년 壬辰 8월 9일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자품이 총명하고 문사(文辭)에 능하더니 장성함에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붕우간에 신의가 있고 친척간에 화목하였다.
선조(宣祖) 31년 戊戌 10월 22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67세였다.
배위 부안임씨(扶安林氏)는 참봉 광헌(參奉 光憲)의 따님인데 집안을 다스림에 규모가 있더니 부군(夫君)께서 돌아가신 후에 애통함이 과하여 마침내 병이 되어 두달 만에 돌아가시니 동년 12월 17일이었다.
묘소는 정읍군 산외면 오공리 간좌(井邑郡 山外面 五公里 艮坐)에 쌍분으로 모시고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이 비문을 지었다.
후에 3자 병사 승서(兵使 承瑞)의 영귀로 말미암아 공에게 병조판서(兵曹判書)의 증직이 내렸다.
3남 3녀를 두었는데 명서(明瑞)는 무과(武科)로 연일현강(延日縣監)을 지냈고, 광서(光瑞)는 첨지(僉知)이고, 승서(承瑞)는 무과(武科)로 남병사(南兵使)이며, 사위는 박용(朴溶) , 노문원 (魯文源) , 양홍발(梁弘發)이다.
3자 승서(承瑞)는 자 계헌(季獻)이니 명종(明宗) 21년 丙寅(1566)생으로 선조(宣祖) 27년 甲午(1594)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37년 甲辰(1604) 3월에 경상도순검어사 류간(慶尙道巡檢御吏柳澗)이 장계(狀啓)를 올려 도내(道內) 각처 관장(官長)들의 치적(治績)을 보고하였는데 그중에 이르기를 "부산첨사 류승서(釜山兪使 柳承瑞)는 군졸들의 고충을 위로하고 어루만짐에 근실하며 소관 막사(幕含)의 수리를 잘 하였읍니다. 참으로 가상한 일이니 따로 포상을 내려야 할줄 알고 있읍니다."고 하였다. 광해군(光海君) 3년 辛亥(1611) 3월에 전라병사(全羅兵使) 재직시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았으나 윤허(允許)하지 않았고, 9년 T巳(1617)에 사과(司果)로 좌천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인조(仁祖) 12년 甲戌(1634)에 등용되어 경상도우병사(慶尙道右兵使)로 나갔다가 이듬해 10월 파직되고 26년 戊子(1648)에 졸하니 향년 83세였다.
※ 墓表, 朝鮮王朝實錄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