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문식(柳文植), 통어사공(統禦使公), Ryu, Moon-Sik, 생몰년:1747-1812, 세:28
純祖朝 武將, 忠景公派, 자 자장(子章).
송암 관(松庵 漢)의 9대손이요, 경상우병사 준(慶尙右兵使 濾)의 증손이요, 전라좌수사 세복(全羅左水使 世複)의 손이요, 삼척영장 집(三隣營將鏶)의 아들이요, 부사(府使) 해풍김 준(海豐金 凌)의 외손이다.
영조(英祖) 23년 T卯 7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나 46년 庚寅(1770)에 무과(武淋)에 급제, 여러 고을수령(守令)을 지내고 정조(正祖) 14년 癸戌(1790) 4월 충청수사(忠淸水使), 17년 癸丑(1793) 3월 황해병사(黃海兵使)에 제수되고, 순조 즉위(純祖 卽位) 庚申(1800) 8월 삼도통어사(三道統禦使)에 승진하고, 이어 함경남도병사(咸鏡南道兵使)로 있던중 5년 乙丑(1805) 12월 회령부사(會寧府使)로 교체되고,이듬해 7월에 함경북도병사(咸鏡北道兵使)로 전임하였으니 실로 팔군(八郡)의 수령(守令)과, 5도(五道)의 병 , 수사(兵,水使)를 지낸 것이다.
10년 庚午(1810) 10월, 선비 김씨(先秕金氏)를 추상(追喪)하여 여묘(廬菫)로 3년을 추복(追服)하던 중 12년 壬申 8월 20일 졸하니 향년 66세였다.
배위 한산이씨(韓山李氏)는 선전관 응화(宣傳官應和)의 따님인데 1남 2녀를 두고 졸하니 장단군 진서면 신경천 소학동(長湍郡 津西面 新慶川 巢鶴洞) 선고묘하 을좌(先考墓下 乙坐)에 고위(考位)와 합부하였다.
1남 굉(液)은 순조(純祖) 10년 庚午(1810)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친환(親患) 10여년에 옷에 띠를 풀지 않고 간호했으며, 졸후(卒後)에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되었다. 2녀는 부총관 전주이존경(副擺管 全州李存驗)과 참판 의령남이형(參判宜寧南履炯)에게 출가하였다. 그리고 서녀 2인이 있어 오위장 한산 이해영(韓山 李海英)과 경주이면규(慶州 李鮑奎)에게 출가하였다.
후손이 거의 서울에 살고 있다.
※ 朝鮮王朝寶錄, 甲子譜.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