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옹 (柳澭 ), 수찬공(修撰公), Ryu, Ong, 생몰년:1443~?, 세:16
수찬(修撰), 행인천부사(行仁川府使), 선산부사(善山府使)
류옹(柳澭 1443~?)
공(公)의 휘는 옹(澭)이요. 자는 자아(子雅)니 참의(參議) 효진(孝眞)의 아들로 정통(正統) 계해(癸亥 · 世宗二十六年 · 一四四三)생이다. 예종조(睿宗朝)에 수찬(修撰)으로 통정대부 인천, 선산, 부사도호(府使都護)를 지냈는데, 모두 청백(淸白)한 치적(治績)이 있었다. 일찍 시를 지어 읊기를 “삼한(三韓)의 높은 가문으로 곤란하고 궁하지만, 손수 종계도(宗系圖)를 펴보니 조상의 풍도(風度)가 자랑스럽네. 선조(先祖)의 사업을 장차 다 이어갈진대, 고산(高山)같이 우러러 전공(前功)이 백배나 더하리”하였고, 또 증조모(曾祖母) 윤씨(尹氏) 생신연회시(生辰宴會詩)에 차운(次韻)하기를 “목련(目連)도 오히려 우난분(盂蘭盆)을 칭찬했거늘, 하물며 부모 곁에서 즐겁게 노는데야. 옛날에 끼친 은혜 갚고자 생각하는바, 오늘 아침 부모님을 즐겁게 모시세. 자주 노자(老子) 정중(庭中)에서 바치는 것 보았고, 자오(慈烏) 안항(顔巷)에서 취하는 것을 기억했네. 선조(先祖)도 막연하고 부모 또한 가셨으니 매양 유지(柔指)를 잡고 슬프게 타네”하였다.
-문화류씨 검한성공파 세덕지(文化柳氏 檢漢城公派 世德誌)
[입력: ryuj 14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