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사 (柳泗), 문원군(文原君), Ryu, Sa, 생몰년: 1423-1471, 세: 15
世祖朝 功臣. 左相公派, 자 학원(學源).
도총제 은지(都摠制 殷之)의 4남으로 세종(世宗) 5년 癸卯에 한양에서 태어났다.
문음(門蔭)으로 출사(出仕)하여 세종(世宗) 27년 乙丑(1445)에 내금위 (內禁衛)에 배속되어 있다가 단종(端宗) 원년 癸酉(1453)에 형들과 더불어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정란(靖難)에 공을 세움으로써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그후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 , 전농시판사(典農寺判事) , 대호군(大讓軍) , 상호군(上護軍)을 거쳐 세조(世祖) 7년 幸巳(1461)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승진하여 진응사(進鷹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와 9년 癸未(1463)에 문원군(文原君)에 책봉되었다.
그후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로 나갔다가 己丑(1469)에 예종(睿宗)이 승하(昇遐)하심에 수릉관(守陵官)에 임명되고 성종(成宗) 즉위와 동시에 공조참판(工曹參判)을 거쳐 원년 庚寅(1470)에 공조판서 (工曹判書)에 승진하였다.
2년 辛卯 12월 7일 돌아가시니 겨우 49세로 용인 완장촌(龍仁 完長村)후록에 장례를 모셨다.
장례에 앞서 조정에서 후한 부의(賻儀)와 희양공(僖襄公)의 시호가 내렸다.
배위 진주정씨(晋州鄭氏)는 우의정 애일당 분(右議政 愛日堂 苯)의 따님으로 1남을 두고, 한양조씨(漢陽趙氏)는 부사 전(府使 ?)의 따님으로 2남을 두었다.
장남 철손(哲孫)은 성종조(成宗朝)에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을 거쳐 순창군수(淳昌郡守)를 지내고, 2남은 철산(哲山)이요, 3남은 철석(哲碩)이다.
공께서 돌아가신 후 자손들이 진주(晋州) 외가댁으로 이거하고, 공의 묘소도 이곳으로 이장하였으니 지금 진양군 금곡면 송극리 인회동 임좌(晋陽郡 金谷面 松谷里 仁會洞 壬坐)의 언덕이다.
공의 부조묘(不祧廟)가 이곳에 있어 지금까지 수호하고 있다.
※朝鮮王朝實錄, 嘉靖譜.
[입력: ryuj 09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