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삼 (柳[目參]), 감찰공(監察公), Ryu, Sam, 생몰년: ?-?, 세:15
世宗刻 文臣, 夏亭公派.
예조참판 맹문(禮曹參判 孟聞)의 2자인데 세종조(世宗刻)에 문음(門蔭)으로 출사하여 직장(直長)으로 재직중, 庚戌(1430) 8월에 판부사 최윤덕(判府事 崔潤德) 등 20여인으로 더불어 상소로서 전세(田稅)의 개정 (改定)을 청하였다.
그후 통례원봉례(通禮院奉禮)에 올라 甲寅(1434)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하고 한림(翰林)으로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거쳐 승문원교검(承文院校檢),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고양(高陽)에 있는 부사(府使) 백봉 기만헌(栢峰 奇晩獻) 묘소 국내(局內)에 있다고 전하나 실전(失博)하였다.
후에 부제학(副提學)에 증직되었다.
배위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사직 환(司直 懼)의 따님으로 1남을 두어 순행(順行)이다.
순행은 신천(信川)과 고양(高陽) 고을 군수를 지냈다. 배위 순흥안씨(順興安氏)는 관찰사 숭효(觀察使 崇孝)의 따님인데 그와 사이에 2남 4녀를 두었다. 아들 희저(希渚)는 문과에 급제, 부제학(副提學)을 지냈고, 희정(希汀)은 무과에 급제 영암군수(靈岩郡守)를 지냈으며, 사위는 첨정 밀양박유(僉正 密陽朴維) , 판결사 연안이곤(判決事 延安李坤) , 첨지 남양홍계신(僉知 南陽洪繼信) , 선전 청주한홍주(宣傅 淸州韓弘澍)이다.
丁卯(1987) 4월에 공의 선고(先考) 참판공(參判公) 묘소가 있는 광주군 퇴촌면 영동리 구룡동(廣州郡 退村面 嶺東里 丸龍洞)에 공의 사단비(祀壇碑)를 세웠는데 비문(碑文)은 족후손 한상(族後孫 漢相)이 지었다.
※朝鮮王朝寶錄, 安東金氏世譜.
[입력: ryuj 09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