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상진 (柳尙軫)

류상진(柳尙軫), 적암공(適菴公), Ryu, Sang-Jin, 생몰년:1647-1693, 세:22
肅宗朝 文臣, 夏亭公派, 자 중거(仲車). 호 적암(適庵).

영암군수(靈岩部守) 희정(希汀)의 5대손이요, 기(箕)의 3자로 인조(仁祖)25년 T亥 12월24일 영암(需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일찍 가정교훈을 독실히 익히고 학문에 전심하여 드디어 문장(文章)이 유여하더니 숙종(肅宗) 3년 T巳(1677)에 사마(司馬)에 급제하고, 10년 甲子(1684)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거쳐 13딘 T卯(1687)에 오수도찰방(繁樹道察訪)으로 나가 남원판관(南原判官)을 겸하였더니 본래 신병(身病)이 있고, 또 어버이의 연세가 70이 넘어 오랫동안 곁을 떠나 있을 수 없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로부터 어버이를 모시면서 분수동(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소재)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스스로 적암(適應)이라 현판을 걸고 시서(誇書)로 즐기었다.
집이 비록 가난하였으나 효성을 다하고, 항상 의관을 정제하고 몸가짐을 엄히 하며, 두 형이 일찍 돌아가심에 형수(兄嫂)와 조카들을 보살펴 때가 늦으면 그 배가 고픈가 물어보고 날이 추우면 그 추위를 물어보는 한편 학문을 가르치고 효제(孝悌)를 권면하니 사람들이 모두 흠앙하고 감복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송계옹(松溪翁)의 손자라"하였다.
배위 함평이씨(咸平李氏)는 한(漢)의 따님으로 2남1녀를 두어 봉위(鳳緯). 봉소(鳳韶)와 완산이 형(完山李 瑩)은 그 아들과 사위이다.
묘소는 나주 옥현 곤좌(羅州 玉峴 坤坐)에 합부하였으며 현손 광조(光祖)가 공의 행장을 지었다. 공의 실기(寶記)가 전하고 있다.
※ 邑誌.

[입력: ryuj 0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