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서 (柳漵)

류서(柳漵), 양호공(襄胡公), Ryu, Seo, 생몰년:1409-1485, 세:15
世祖朝 功臣, 左相公派, 자 포옹(浦翁).

도총제 은지(都摠制 殷之)의 2남으로 태종(太宗) 9년 己丑에 한양(漢陽)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궁마(弓馬)의 무술(武術)을 익히더니 세종(世宗) 11년 己酉(1429)에 음사(蔭仕)로 좌군섭부사정(左軍攝副司正)을 제수 받았다.
단종(端宗) 원년 癸酉(1453)에 아우들과 함께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정난(靖難)에 공을 세워 정난공신(端難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乙亥(1455) 정월에 충좌위좌영호군(忠佐衛左領護軍)으로서 전 일백결(田 一百結) , 노비 칠구(奴婢 七口) , 마 일필(馬 一匹) , 백은 십량(白銀 十兩) , 표리 일단(表裏 一段) 등을 하사받고, 이듬해 상호군(上護軍)에 승진되었다.
5년 己卯(1459) 2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승진하고 아울러 문천군(文川君)에 봉하였더니 얼마 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승진하였다.
성종(成宗) 12년 辛丑 3월에 사헌부(司憲府)의 탄핵(彈劾)을 받았으나 주상(主上)께서 『류모는 선조의 공신으로 또한 노인이니 허물치 말라』는 특명을 내리셔 죄를 입지 않았다.
16년 乙巳년에 향년 77세로 돌아가시니 나라에서 부조(賻助)와 아울러 양호공(襄胡公)의 시호가 내렸다.
배위 순천김씨(順天金氏)는 유온(有溫)의 따님으로 3녀를 두어 대호군 신천강윤조(大護軍 信川康允祚) , 현감 합천이효재(縣監 陝川李孝哉) 사직 조승지(司直 趙承智)에게 출가하였다.
공의 후손이 없어 모든 사적이 인멸되었는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고람(考覽)한 바 이상과 같다.
※朝鮮王朝實錄, 嘉靖譜

[입력: ryuj 09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