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신 (柳莘), 전직공(殿直公), Ryu, Shin, 생몰년: , 세: 14,
高麗 恭愍王朝 蔭仕, 侍郎公派, 호 후미(後薇).
공은 미재 광수(薇齋 光秀)의 2자이다.
고려 공민왕조(恭愍王朝)에 문소전직(文昭殿直)으로 있다가 왕이 피해(被害)됨을 당하여 국사(國事)를 능히 붙잡지 못할것을 알고 사직한 후 부친을 따라 청주 등등산(淸州 登登山)으로 들어가 부모를 지성으로 모시고 형제간에 우애를 독실히 하였다.
조선(朝鮮)이 개국되자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과 함께 소명(召命)을 받았으나 끝내 나가지 않고 기양(岐暘 :燕?) 동강(桐江) 위, 당산(唐山) 아래로 이거하여 채미가(採薇歌)를 읊으며 여생을 마치었다.
배위 남양이씨(南陽李氏)는 2남2녀를 두었는데 아들 인관(仁寬)은 별시위(別侍衛)요, 의관(義寬)은 사인(舍人)이며, 사위는 사직 김유전(司直 金有全)과 사직 진예행(司直 秦禮行)이다.
묘소는 본래 청원군 강외면(淸原郡 江外面) 호암산(虎岩山) 기슭에 있었는데 후손의 세거지인 연기군 서면 쌍전리 군량동(燕岐郡 西面 雙錢里 軍糧洞) 을좌원(乙坐原)에 이장하고, 수년 후 甲子(1984) 10월에 묘비를 세웠다.
[입력: ryuj 09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