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함(柳壽咸), 한림공(翰林公), Ryu, Soo-Ham, 생몰년:1663-1683, 세:24
肅宗朝 文臣 夏亭公派, 자 형로(亨老).
거창현감 용공(居昌縣監 用恭)의 6대손이요, 통덕랑 한상(通德郎 漢祥)의 3자로 현종(顯宗) 4년 癸卯생이다.
말을 배을때 문득 문자를 해득하여 5세에 토련(土蓮) 시를 지어 이르기를 『수련(水蓮)이 어찌하여 흙 위에 나 있느냐』하니 사람들이 모두 듣고 놀란다. 겨우 7세에 경서와 사기를 통달하지 않음이 없음으로 서하이공민서(西河李公敏敍)가 보고 기특히 여겨 이르기를 『남도에 와서 얻은 것은 이 기이한 아이를 본 것 뿐이다.』하고 사제(師弟)의 의를 맺었다. 12세에 홍도전(紅桃傅)을 지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며 13세에 향시(鄕試)에 뽑혔는데 나이가 어림으로 낙제 당하고 16세에 또 향시에 들었으나 어버이의 만류로 그만 두었다.
20세 되던 숙종(肅宗) 8년 壬戌(1682)에 중형 수곤(壽坤)과 함께 진사시에 통방(同構)급제하고 동년11월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즉시 한림(朝林)으로 천거(薦擧)되었는데 이듬해 癸亥 정월 8일에 불행히 돌아가시니 겨우 21세였다. 당시 결혼도 하지 않고 돌아가셔 장성 기동 선영 좌록 손좌(長城 基洞 先塋 左麓 巽坐)에 장례를 모시었다.
※ 國朝榜目, 家狀.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