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柳泳), 정랑공(正郞公), Ryu, Yeong, 생몰년:1698-1784, 세:24
英祖朝 文臣 夏亭公派, 자 도함(道涵).
예조참판 맹문(禮曹參判 孟聞)의 4자 수(眸)의 9대손이요, 진사 덕택(德澤)의 증손이요. 찰방 형(察訪 訓)의 손이요. 인서(寅瑞)의 장자요. 전주이우만(全州李宇萬)의 외손으로 숙종(肅宗) 24년 戊寅에 양주(陽州)에서 태어났다.
영조(英祖) 29년 癸酉(1753)에 56세로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 제삼인(甲科 第三人)으로 급제하여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호조정랑(戶曹正郎)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정조(正祖) 8년 甲辰 10월 15일에 졸하니 향년 87세였다. 수직(壽職)으로 첨중추(僉中據)에 가자(加資)되었다.
배위 언양김씨(彦陽金氏)와의 사이에 자녀를 두지 못하여 아우 무과 흡(武科 瀉)의 장자 춘영(春榮)을 맞아 계자하였다.
묘소는 양주 행단리 선영하 간좌(楊州杏壇里 先榮下 艮坐)에 합부하였다.
공의 중제 집(潗)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희천군수(熙川郡守)로 재임중 영조(英祖) 16년 庚申(1740) 4월 사헌부(司憲府)의 탄핵을 입고 파직되었다. 한편 효성과 우애의 행실이 뛰어나 사림(士林)의 정문(呈文)이 있었으며, 향년 65세로 영조(英祖) 45년 已丑(1769)에 돌아가시니 역시 양주군이담면행리(楊州郡伊淡面杏壇里). 지금 서울 사당동(社堂洞) 선영하간좌(先塋下艮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전주이세열(全州李世說)의 따님과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 朝鮮王朝寶錄, 國朝榜目.
[입력: ryuj 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