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용공 (柳用恭)

류용공(柳用恭), 모강공(茅崗公), Ryu, Yong-Gong, 생몰년:1492-1551, 생몰년: ?-?, 세: 18,
夏亭公派, 자(字) 이손(而遜), 호(號) 모강(茅崗)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이다.
성종(成宗) 23(壬子, 1492)년 12월 11일 한양(漢陽) 성남(城南)에서 출생하셨다. 생원, 진사시(進士試)를 거쳐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에 음보(蔭補)되여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正六品)을 역임하고 명종(明宗) 5(1550)년에 거창현감(居昌縣監, 從四品)에 임명되었으나 1년이 못되어 1551(명종 6)년 12월 13일에 관아(官衙)에서 순직(殉職)하시니 군민(郡民)이 선정(善政)에 감동하여 송덕비(頌德碑)를 세워 추모하였다.
배위(配位)는 정부인(貞夫人) 하동정씨(河東鄭氏)니 성균관(成均館) 생원(生員) 효손(孝孫)의 따님으로 1493년 9월 8일에 출생하시고 1568년 12월 2일에 운명(殞命)하시었다.
슬하(膝下)에 5남 4녀를 두셨고, 현존 후손은 약12,400명으로 장자(長子)는 부사과(副司果) 증(贈) 형조참의(刑曹參議) 몽벽(夢璧)이고, 2자(子)는 첨정(僉正) 증(贈) 이조판서(吏曹判書) 몽익(夢翼)이며, 3자(子)는 내금위장(內禁衛將) 몽두(夢斗)이고, 4자(子)는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광주목사 몽정(夢井)이며, 5자(子)는 직산군수 南齋公 몽삼(夢參)이시다. 장녀(長女)는 참봉(參奉) 정함(鄭涵), 2녀(女)는 진사(進士) 안혼(安琿), 삼녀(三女)는 문창후(文昌後), 계녀(季女)는 진주인(晉州人) 류박(柳博)에게 각각(各各) 출가(出嫁)하였다.
1자 몽벽(夢璧)의 후손은 현존수 약 1570명으로 장자 렴(濂)은 정유재란때 의병장으로 선무원종훈, 증 공조참의, 대사공(宣武原從勳, 贈 工曹參議, 大司公)이고 렴의 장자 부사과(副司果) 증(贈) 병조참의(兵曹參議) 경중(敬中)의 자(子) 武科, 資憲大夫 知中樞府事 계흥(繼興)의 후손은 영암군 모산리, 보성군 노동면 명봉리, 해남군 화산면 흑석리 등에 세거하고, 2자 신중(愼中)의 子 進士, 義禁府都事 반(攀)의 후손은 모산리, 금정면 안노리, 익산, 신북, 해남, 강진 등지에 세거하고 있고, 2자 몽익(夢翼)의 후손은 현존수 약 2,500명으로 장자인 해남현감(海南縣監) 증(贈) 좌찬성(左贊成) 속(洬)의 후손이 서울 강남구 율현동(栗峴洞)에 집단 세거(世居)하고, 洬의 子 贈 영의정 성오(誠吾), 孫 영의정 약재(約齋) 상운(尙運), 대사간(大司諫) 상재(尙載), 曾孫 좌의정 봉휘(鳳輝) 등 후손도 율현동 및 廣州市, 용인시, 안산시, 서울 강동 및 제천, 충주, 영월 등 영암 모산리에, 2자 贈 좌승지(左承旨) 사교당(四矯堂) 준(浚)의 후손은 영암 모산리에, 해남, 금정면 월평리와 취적리에, 광주(光州) 및 나주 왕곡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으며 4자 몽정(夢井)의 후손은 약 5400명으로 공의 1자 주부공 형(炯)의 후손 종가는 영암군 모산리에, 나머지 후손은 금정면 연소리,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 평촌, 신풍리 산곡, 구암, 취적 내동 소라면 관기, 동산읍 평사리, 순천시 별양면 하림리, 보성읍 주봉리, 광양읍 목성리, 봉강면 구서리, 해남군 화산면 석전리, 경남 거창군 마리면 월계리 등에 세거하고, 광주, 서울, 인천, 부산 등 점차 도시로 진출 세거하게 되었다. 2자 호(滸)(의병장 止隅齊公)의 후손은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광주 평동면 금곡, 소라면 당촌, 송강면, 황전면, 파주(경기), 고하면 상지석리, 모산, 강진에 산거하고 3자 양(瀁)의 후손은 월래 담양군 고서, 전북 달천에 세거하였으나 지금은 서울, 울산 등 도시에 진출 세거하고 있다. 5자 몽삼(夢參)의 후손은 현존수 약 2,630명으로 長子 通政大夫 司僕寺正 副司果 약(瀹)의 1자 선전관(宣傳官) 인남(仁男)의 후손이 신북면 모산리(이목동), 이천리, 광주(光州), 금정면 남동리, 나주 동강면 월량리에 세거하고, 2자 증(贈) 좌승지(左承旨) 의남(義南)의 후손은 정읍시 덕천면 달천리에 집단 세거하고, 서울, 부산, 논산, 순창 쌍책에 산거, 3자 청도군수 신남(信男)의 후손이 정읍 다내, 아산시 온양, 당진 등에 산거하고, 남제공(南齊公)의 2자 무과(武科), 충순위(忠順衛) 척(滌)의 후손은 원주 가미지에, 廣州市 중부면 산성리 및 초월읍 무갑리와 실촌면 지암리에, 아산시 영인면 구저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세향일: 음력 10월 15일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 사당동

[입력: ryuj 09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