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사적

The Grand Assembly of the Moonhwa Ryu Clan
서울시문화재79호 문양군 류희림묘역
작성자 : 류기창
작성일 : 2021.05.17 / 조회수 : 1,098
사진


문양군 류희림은 (1520 1601) 임진왜란시

73 세의 노구를 이끌고 선조의 의주파천과 광해군의 분조 ( 항일 임시정부 ) 에 좌우승지로 진력하여 호성공신 3 ,

위성공신 2 등이 되어 임진왜란 승전에 양대공신의 교서를

받아서 정권 찬탈이나 권력 유지에 앞장선 공신이 아니고

국난극복의 양대공신이 됨이 특이한 사항이다

 

임란 이전에 충청도 . 강원도 .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기에 임진왜란시 현지 주민의 항왜 의병을 독려하고 아들 류명남도 광해 세자익위사로 활동하여 호성원종 3 등공신으로 부자공신 父子功臣 이 되어 송파구 오금공원 선영에 아버지와 할아버지 3 대묘역을 서울시 유형문 화재 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

 

예조판서 류희림에게 증직하는 교서

敎故禮曹判書柳 希霖贈職書

 

왕은 말하노라 . 위험을 당하여 능히 굴레와 고삐를 잡고 임금의 행차를 수행한 노고 ( 勞苦 ) 를 바침은 작위를 내리고 산하에 

맹서하고 본받아 장려하고 종정 ( 鐘鼎 ) 에 새길 큰 공훈이며 아주 여러 차례 자세히 기록하고 무덤을 아름답게 할 일이다 .

王若曰臨危執覊靮 克輸扈蹕之勤勞 䟽爵誓山河 式奬勒鍾之勳烈 肆申甄錄 用賁泉塗

 

오로지 경 ( ) 은 명예를 가까이 하지 않고 , 맑고 관대하며 , 마음이 넓고 깊으며 공경하고 법도가 있으며 ,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단정하며 , 온후 ( 溫厚 ) 하고 겸허하며 , 마음속의 회포가 차분하고 조용하며 , 처음 명경과에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더니 오래지 않아 식년시를 거쳐 임금의 부절 ( 符節 ) 을 나누어 받았도다 .

惟卿善不近名 淸而容物 弘深肅括 存操履之端方 蘊藉謙冲 識襟懷之沉靜 始明經而釋褐 俄歷試而分符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사간원과 바람과 서리 같은 강경한 사헌부에서 왕명의 출납에 오로지 진실로 하였으며 , 은대 ( 銀臺 , 승정원 ) 에서 임금의 목과 혀의 역할을 담당하고 ( 승지를 말함 ), 인재 등용과 무능한 자를 내침에 공평하게 하였으며 , 아가위나무 장막 ( 지방관이 선정을 베푸는 처소를 말함 ) 에서 오로지 관찰사의 임무를 수행하고 , 일을 맡김에 은총을 베풀었다 .

松竹薇垣 風霜栢府 出納惟允 司喉舌於銀㙜 黜陟以公 專方面於棠幕 委任實出眷注

 

역임 ( 歷任 ) 한 것이 모두 청환 ( 淸宦 ) 과 요직이었으며 , 진년 ( 辰年 ) 의 고생과 근심 ( 임진왜란을 말함 ) 에 이르러 긴 뱀 ( 잔인한 왜적을 말함 ) 이 들이받아 무너뜨린 일을 맞아 나라가 많은 재난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 내가 임금이 됨을 즐겨하지 않고 ,   매우 급하게 파촉 ( 중국의 사천지방을 뜻하는데 , 험준한 곳을 뜻하는 듯 ) 으로 가게 되어 심히 부끄럽게 궁전을 내려와 봉천 ( 중국의 지명 , 당나라의 덕종의 일을 비유한 것 ) 으로 임금의 거동을 옮겼다 .

歷敭都是淸要 逮執徐之艱虞 値長蛇之隳突 國未堪乎多難 予不樂乎爲君 蒼黃巴蜀之行 深慙下殿 橎越奉天之幸

 

어려움이 겹쳤는데 저 노성 ( 老成 : 경력이 많은 노련한 신하 ) 의 충신 [ 류희림을 의미 ] 이 힘을 쏟아 예를 지켰으며 , 하늘의 별들과 같이 엄중하게 앞뒤에서 경계하고 보호하였으며 , 하늘의 별들과 같이 받들어 일을 주선하고 부지런히 섬기고 잠시도 버리지 않았다 . 자기 몸을 위해 도모하기보다는 험하고 고생스러움을 두루 겪으며 왕의 일이 아닌 것이 없었다 .

始驗增埤 有老成之藎臣 用筋力以爲禮 鉤陳玄武 嚴警衛而後先 木主星宮 奉周旋而奔奏 造次顚沛之不舍 寧爲身謀 險阻艱難之備甞 莫非王事

 

조정에 서서는 필공 ( 畢公 , 주 문왕의 아들 ) 의 정색 ( 正色 ) 을 보였고 [ 엄하게 정사를 행한 것을 의미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침에 있어서는 배도 ( 裵度 , 당나라 때 난을 평정함 ) 의 충성스런 마음을 알았다 . 원래 상태로 돌아가 서울로 돌아와서 예조에서 참판이 되었다 .

* 행장 : “ 도성 ( 都城 ) 으로 돌아와 예조참판 ( 禮曹叅判 ) 에 제수 ( 除授 ) 되었더니 정유 ( 丁酉 , 1597 ) 에 동지돈녕부사 ( 同知敦寧府事 ) 에 체임 ( 遞任 ) 되었다 .”

立朝見畢公之正色 殉國認裵度之忠心 洎反正於京師 秩亞卿於宗伯

 

노년의 지혜가 낡지 않았고 , 있는 힘을 다하여 임무를 수행하였고 , 밤낮 조정에 출근하였고 , 몸과 마음을 바쳐 나랏일에 힘썼다 . 단단하고 굳세어서 뽑히지 않는 절개가 있었고 빼어나게 스스로의 지조를 지키는 풍모가 있었다 . 나이가 여상 ( 呂尙 : 태공망 . 여든 살에 장수가 됨 ) 이 제에 봉해진 나이에 가까워 하늘이 어찌 공을 빼앗아갔는가 . 문언박 ( 북송 때 재상 ) 이 치사 ( 致仕 :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 ) 한 때와 같이 나라는 장차 어떻게 한단 말인가 .

* 류희림 : 1601 년에 82 세로 사망 . 문언박은 91 세로 죽었음 .

老智不耄 思竭力而效勞 夙夜在公 期鞠躬而盡瘁 礭乎不拔之節 嶷然自守之風 年近呂尙之封齊 天胡不憗 時猶彦博之致事 國將奈何

 

이제 으뜸의 공적과 영구히 잊기 어려운 숙덕 ( 宿德 : 오래도록 쌓은 덕망 ) 을 추록 ( 추가하여 기록함 ) 하고 , 주나라의 사훈 ( 司勳 : ( ) 나라 때 공상 ( 功賞 ) 의 일을 맡은 벼슬 ) 에게 명하고 한나라 관리에게 쌓은 공로를 살피게 하여 이에 책훈 ( 공훈을 찬양함 ) 하여 호성공신 ( 임금을 호종한 공신 ) 3 등으로 삼는다 . 더욱 사랑을 주고 , 슬픔과 영광을 기린다 . [ 살아서는 영예롭게 여기고 죽어서는 애통하게 여긴다 , 는 뜻 .]

只今追錄元功 終古難忘宿德 命司勳於周等 甄積勞於漢官 肆策勳爲扈聖功臣三等 寵贈斯加 哀榮攸在

 

형상을 운각 ( 雲閣 ) 에 그려 당시의 모습을 되새기게 하고 , 무덤에 제사를 내려 오늘날의 영명 ( 英明 ) 함을 기념하라 .

圖形雲閣 想當時之儀容 賜祭暝途 念今日之英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