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류정훈
작성일 : 2024.02.08 / 조회수 : 544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제35호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백천로 236-1
환산정
(
環山亭
)
은
1637
년 백천
(
百泉
)
류함
(
柳涵
, 1576~1661)
선생이 창건한 정자
(
亭子
)
로
,
방
1
칸의 소박한 죽정
竹
亭
)
이었는데
, 1896
년 중건
(
重建
), 1935
년
1
차 보수
(
補修
), 1958
년
2
차 보수
(
補修
), 2010
년
1
차 중수
(
重修
)
하였다
.
공
(
公
)
의 휘는 함
(
涵
)
이요 자는 자정
(
子淨
)
이며
,
호는 백천
(
百泉
)
으로 본관은 문화류씨
(
文化柳氏
)
이다
.
공은
이괄 변란
(
李适變亂
, 1624)
에 족손
(
族孫
)
백석
(
白石
)
류집
(
柳楫
)
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양호
(
兩湖
)
로써 근왕
(
勤王
)
의 계획을 세웠고
,
정묘호란
(
丁卯胡亂
, 1627)
에는 조카 류응량
(
柳應良
)
과 함께 전라도
(
全羅道
)
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
병자호란
(
丙子胡亂
, 1636)
에는 임진왜란
(
壬辰倭亂
, 1593)
때 평양
(
平壤
)
에서 순절한
백형
(
伯兄
)
홍
(
泓
)
이 썼던 보검
(
寶劒
)
을 차고
,
화순
(
和順
)
에서 거의
(
擧義
)
하여 맹주
(
盟主
)
로서
524
명의 의병
(
義兵
)
을 이끌고 청주
(
淸州
)
까지 올라갔다가 화친
(
和親
)
의 소식을 듣자 통곡하고
,
돌아와서 환산정
(
環山亭
)
을 짓고 절속
(
絶俗
)
하였다
.
산자수명
(
山紫水明
)
을 자랑하는 환산정
(
環山亭
)
은 백천
(
百泉
)
선생의 우국지한
(
憂國之恨
)
을 삭이던 곳으로 소요하며 때때로 시를 읊었다
.
공이 정자를 세우고 운
(
韻
)
을 부쳤으니
“
마당엔 외로운 소나무 섬돌엔 국화 진나라 율리 사는 도연명에게 배웠네
.
세상이 시끄러워 처음 계획 어긋나니 산수 그윽한 곳에 만년의 정 의탁했네
.
봄가을의 나뭇잎에도 나이를 잊었지만 마음속엔 일월로 황명을 보존했네
.
날 추워야 늦게 시듦 그 누가 안다 했나
.
산 늙은이 세월 따라 불평도 사그라지는 걸
(
庭有孤松階有菊 學來栗里晉先生 乾坤磊落違初計 山水幽閒托晩情 葉上春秋忘甲子 心中日月保皇命 歲寒後操其誰識 時與山翁和不平
)”
라고 하였다
.
공은 벼슬을 멀리하고 오직 후학들의 강학
(
講學
)
에 진력하며 성리학에 전심하면서
,
당대 문장가였던 지봉
(
芝峯
)
이수광
(
李睟光
)
우복
(
愚伏
)
정경세
(
鄭經世
)
등과 더불어 도의
(
道義
)
로 사귀고 이기
(
理氣
)
로 문답하여
<
사서설
(
四書說
)
>
을 남겼다
.
공
公
의 시문
(
詩文
)
은
“
낙하절창
(
洛下絶唱
)
이요
,
남중독보
(
南中獨步
)
”
라고 평을 받을 정도로 단아하고 진솔하다
. 90
세가 넘은 부모를 극진히 모셔 백천효자
(
百泉孝子
)
로도 이름이 높았다
.
언동사
(
彦洞祠
)
에 배향
(
配享
)
되었다
.
현재의 환산정은 정해년
(
丁亥年
, 2007) 1
월
5
일
‘
화순군향토문화유산 제
35
호
’
로 지정되었고
,
정면
5
칸 측면
2
칸의 전퇴
(
前退
)
를 둔 남향
(
南向
)
의 평면 형식이다
.
환산정
(
環山亭
)
편액은 원교
(
圓嶠
)
이광사
(
李匡師
)
선생의 갈필
(
渴筆
)
작품이며
,
연화부수형
(
蓮花浮水形
)
의 광취명당
(
廣聚明當
)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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