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회자료실

The Grand Assembly of the Moonhwa Ryu Clan
문정공 류공의 사세손(현손) 류정현공
작성자 : 류경래
작성일 : 2021.05.12 / 조회수 : 107

세종 32권,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5월 15일(무신) 4번째기사
좌의정으로 치사한 유정현의 졸기

 

좌의정 으로 치사(致仕)한 유정현(柳廷顯) 이 졸하였다. 정현문화현(文化縣) 사람이었다. 고려 때의 중찬(中贊) 유경( 柳璥 ) 의 사세손(四世孫)이고, 문화군(文化君) 유구(柳丘) 의 아들이었다. 처음에는 고려 에 벼슬하여 사헌 규정(司憲糾正) 에 임명되고, 여러번 옮겨 전라도 안렴사(按廉使) · 사헌 장령(司憲掌令) · 지양근군사(知楊根郡事) · 사헌 집의(司憲執義) · 밀직사 우대언(密直司右代言) 을 거쳐 좌대언 으로 옮겼다. 우리 조정에서는 갑술년(甲戌年)에 상주 목사(尙州牧使) · 병조 전서(兵曹典書) · 완산 부윤(完山府尹) 으로 제수되고, 나가서 전라도 도관찰사 가 되고, 다시 경기좌우도 도관찰사 · 중군 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 로 옮기고, 또 충청도 도관찰사 · 판한성부사 로 나갔다가, 형조 판서 로 옮기고 예조 판서 로 전직되었으며, 또 나가서 서북면 도순문찰리사(西北面都巡問察理使) 와 평양 부윤(平壤府尹) 이 되고, 사헌부 대사헌 · 이조 판서 ·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 병조 판서 를 거쳐 다시 참찬 이 되고, 찬성사(贊成事) 로 승진되었다가 병신년에 좌의정 에 임명되어 영의정 으로 옮겼다. 기해년 대마도 정벌 때에는 삼군 도통사(三軍都統使) 가 되고, 갑진년(甲辰年)에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 판호조사(判戶曹事) 를 겸무하다가 병오년에 다시 좌의정 이 되어 병으로써 면직을 청하여 치사한 지 4일 만에 돌아가니, 나이가 72세이다. 부음(訃音)이 들리니 임금이 매우 슬퍼하여 백관을 거느리고 거애(擧哀)했으며, 조회를 3일 동안 폐하고 소선(素膳)을 들었다. 부의로 미두(米豆) 70석과 종이 1백 50권을 내리고 정숙(貞肅) 이란 시호(諡號)를 내리니, 숨기지 않고 굴함이 없는 것을 정(貞)이라 하고, 헤지지 않게 꽉 잡은 마음으로 결단하는 것을 숙(肅)이라 한다. 정현 의 사람됨은 엄의 과단(嚴毅果斷)하고 검약 근신(儉約謹愼)하여, 일을 조리 있게 처리하고 논란하여 토의함에 강정(剛正)하여 피하는 바가 없었다. 태종(太宗)양녕(讓寧) 을 폐하고 나라의 근본을 정하지 못하매, 여러 사람의 의논이 의위(疑危)하였는데 정현 이 맨 먼저 어진 이를 택해야 된다는 의논을 내었으니, 그 뜻은 성상을 두고 말한 것이었다. 태종 이 옳게 여기어 들으시고 드디어 계책을 정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임금이 그의 소신(所信)을 중히 여겼으나, 정치를 함에 가혹하고 급하여 용서함이 적었고, 집에서는 재물에 인색하고 재화를 늘이어 비록 자녀라 할지라도 일찍이 마되[斗升]의 곡식이라도 주지 않았으며, 오랫동안 호조를 맡고 있으면서 출납하는 것이 지나치게 인색하더니, 사람들이 그를 많이 원망하여 상홍양(桑弘羊) 1097) 으로 지목하기까지 되었으니, 이것이 그의 단점(短點)이었다. 아들이 둘이니 곧 유의(柳儀)유장(柳章) 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19장 A면

【영인본】 3책 26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