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회자료실

The Grand Assembly of the Moonhwa Ryu Clan
류몽정(柳夢井) 류호(柳滸)의 상소 탐구
작성자 : 류재균(夏谷)
작성일 : 2022.04.05 / 조회수 : 532
사진

류몽정 ( 柳夢井 ) 류호 ( 柳滸 ) 의 상소 탐구

류몽정이 목사라는 근거 자료

己丑錄 上 정곤재 행장 ( 황혁지음 ) 鄭困齋行狀 ( 黃赫撰 )

나덕준 등이 나주 대안동에 서재를 세우고 향음주례를 행할 때 선생을 받들어 빈 ( ) 으로 삼았더니 목사 류몽정 ( 柳夢井 ) 이 듣고 가서 감탄하여 말하기를 고례의 행함을 오늘날에 다시 보겠으니 어찌 성사가 아니겠는가 . 이 땅은 인재의 고장이나 오직 사화 ( 詞華 : 글읽기와 글 짖기 ) 에만 힘쓰니 반드시 선생을 얻어야 선비의 풍속을 고쳐 줄 것이다 하고 ~~~~

참고문헌 :

황혁 ( 黃赫 , 1551 명종 6~1612 광해 4) 좌찬성이 기축년 10 2 일부터 쓴 기축록 ( 대동야승 제 446p) 1989 10 20 일 발행 저작권자 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 , 발행자 민문고 , 기축록국역위원 김종오 하성재 등

곤재전 ( 困齋傳 ) : 미수 허목 ( 眉叟 許穆 )

곤재 선생 전씨의 휘는 개청 ( 介淸 ) 이며 선조 ( 宣祖 ) 때 징사 ( 徵士 ) . 선생은 도를 돈독히 믿고 예를 좋아하고 은거하여 가르치니 제자들이 날로 모여들므로 제자를 거느리고 향음주례를 대안 학사에서 행하니 주목 류몽정 ( 柳夢井 ) 이 가서 그 예를 보고 감탄하여 삼대의 예가 여기에 있도다 하고 천거하여 주 ( ) 의 훈도를 삼으니 선생이 사제의 예를 엄하게 하고 시교 ( 施敎 ) 를 오로지 소학과 남전향약 ( 藍田鄕約 ) 대로 하며 관혼 상제를 중히 여기었다 .

참고문헌 :

허목 ( 許穆 , 1595 년선조 28~1682 년숙종 8) 이조판서 우의정 ,( 대동야승 제 453p)

2. 상소문

백진민이 옥중에서 자명한 소 ( 대동야승 제 431p 류몽정 선조와 관련 있는 12 일 이후 번역분만 여기에 씀 )

12 , 류몽정이 체포되어 갇혔다 ,

13 , 류몽정의 진술에 이몸은 본성이 어리석어 지난 일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합니다 .

대게 정묘년에 역적과 함께 생원시에 합격하였는데 기묘년에 전라도사가 되어 들으니 역적이 벼슬을 버리고 와서 오직 학문에만 힘쓴다 하였습니다 . 그 때에 혹 전주를 왕래하게 되면 역적의 집이 큰 길가에 있으므로 찾아기 만났으나 더러는 서신 상봉도 있었습니다 .

임오년 8 월에 이몸은 고부군수가 되어 군에 5 년 동안 있으면서 차사원 ( 差使員 ) 의 자격으로 전주를 왕래하면서 더러 방문하였고 또 고부군이 역적의 사는 곳과 거리가 멀지 않아 역시 통신도 하였습니다 .

병술년 4 월에 이몸은 남원부사로 부임하였는데 부임후에는 거리가 가깝지 인해 통신을 못하였습니다 .

역적은 선비라는 이름을 얻어 세상을 속이는데 힘썼으며 이몸 또한 사람 아는데는 어두어 도명 ( 盜名 ) 하는 술책에 빠져서 만가닥으로 찢어 죽일 역적이라는 것을 진작 살피지 못하고 오직 한 때의 명성에만 따라 경솔하게 서로 만났으니 이는 실로 식견이 밝지 못한 탓이라 만번 죽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

무자년 여름에야 비로서 역적의 폐려한 행실이 많음을 듣고 전후에 왕래한 답서를 모두 불태웠으며 항상 분해했는데 그해 가을에 또 역적이 수절하는 젊은 과부를 강간하여 첩으로 삼았다는 말을 듣자 여기서부터 그의 사람 됨을 깨닫고 기왕에 서로 안 실수를 깊이 후회하여 분한 말과 심한 욕을 하였더니 역적도 또한 절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이후부터는 일체 서로 만나자 않앗습니다 . 결탁했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극히 애매합니다 . 오희길의 서간에 있는 사연은 반복하여 생각해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

이몸은 또한 무상한 몸이오나 한때에 유명햇으니 이름이 났으므로 역적이 한 말은 다만 시의에 적합하게 하지는 것 뿐입니다 .

이몸 또한 세세로 녹을 먹었으며 또 거짓말이나마 효행한다고 발탁하여 첫벼슬에 6 품직을 제수하여 대시 ( 臺侍 ) 의 열에 참여하기에 전에 3 읍의 수령이 되어서는 나라일에 힘을 다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고자 하였습니다 .

이몸은 어리석고 또 지식이 없어 역적이 품은 흉악한 정상을 먼저 발견하지 못하고 한때의 명성만 따라 서로 알게 된 일은 만번 죽어도 유감이 없습니다 . 이몸의 애매한 사정의 까닭을 상고하여 시행하소서 하고 류몽정이 조서를 아뢰었다 .

( 왕이 ) 전교하기에 엣날에 제갈 양은 나라를 다스릴 때에 죄에 자복하고 속마음을 숨김없이 바친 자에게는 비록 중죄라도 반드시 석방하였고 교묘한 말로 얼버무리는 자에게는 비록 경죄라도 반드시 죽였다 . 지금 몽정이 역적과 더불어 연결한 정상은 비록 귀머거리라도 아는데 하물며 그 사항이 편지속에 환히 나타남에 있어서랴 . 극히 마음이 아프니 그를 용서할 수 없으나 다만 장래에 심문해야할 죄인이 많으니 형을 가하지 말고 가두라 하였다 그날 한번 형을 받고 아뢰였다 .

참봉 류호의 상소 ( 叅奉 柳滸 上疏 ) : 의병에 참전한 근거와 참봉 제수 ( 除授 ) 내력

엎드려 아뢰옵니다 . ( ) 같은 미신 ( 微臣 ) 이 이런 난리를 당하니 , 사직이 폐허가 되고 사회가 문란함을 통분하여 서쪽을 바라보며 마음을 억제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피눈물을 홀립니다 .

신이 부재임을 해아리지 않고 몸을 잊고 의에 분발하여 소모사 ( 召募使 ) 종사관 ( 從事官 ) 홍기상 ( 洪麒祥 ) 과 함께 안성 전주등지에서 창의하여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의주에 달하지 외람되게도 임금님의 은총을 입어 신에게 군자감 참봉을 제수하시니 조심스럽고 놀라와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

생각컨대 신의 아비 몽정은 외람되게 융숭한 총애를 입어 6 품직으로 승진되어 군 ( ) ( ) 를 누차 맡아서 모두 잘 다스렸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

불행히 본거지인 나주라 역적과의 같은 도 ( ) 의 사람이 되었고 진사방 ( 進士榜 ) 에 역적과 연명 ( 連名 ) 되니 마침 동년의 친분이 있었습니다 . 그래서 이웃 고을의 수령에 임명되자 비록 서로 문안하는 예는 있었으나 어찌 속으로 역모를 품고 몰래 흉악을 기르는 줄이야 알았겠습니까 .

당초 초옥 ( 招獄 ) 할 때에 임금님이 신의 아버지의 무고함을 밝게 살피시고 본가로부터 딴 도로 이배 ( 移配 ) 하라는 전교가 이미 내렸으나 잘 못되어 국문에 걸려 필경 형신 ( 刑訊 ) 으로 죽었으니 그 원통함은 온 나라가 모두 아는 바이며 사람마다 모두 불쌍해하는 바입니다 .

임금님께서 가려 내시고 추방되어 먼 곳으로 유배되었던 무리들은 모두 조정으로 돌아오게 하여 현관이 되었는데신의 아비는 유독 은혜를 입지 못하고 아직 원통함을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

이 유신 ( 維新 ) 하는 날 옥의 문을 여는 봄을 맞이하여 곤충이나 초목도 임금님의 은헤를 입는데 지하에 있는 신의 아비의 영혼은 밝은 시대를 당하여도 명명 ( 冥冥 ) 한 속에서 울고 있을 것입니다 ,

엎드려 바라옵건대 임금님께서는 특히 그 원통함을 살피시와 소신의 벼슬을 환수하시고 신의 아비의 복관 ( 復官 ) 을 명하신다면 어찌 소신이 뼈가 가루가 되도록 충성을 바치지 않겠으며 또한 신의 아비도 지하에서 결초보은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