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회자료실

The Grand Assembly of the Moonhwa Ryu Clan
약재공의 부(考) 묘갈명 탐구
작성자 : 류재균(夏谷)
작성일 : 2022.06.17 / 조회수 : 59


약재공의 부
(

)
묘갈명 탐구


 



1.
贈領議政柳公誠吾 墓碣銘




(
증영의정류공성오 묘갈명
)



高麗氏初基文化柳大丞車達大顯自後凡以柳爲氏者皆本於大丞有諱寬本朝



(
고려씨초기문화류대승차달대현자후범이류위씨자개본어대승유휘관본조
)



右議政號夏亭公其八世孫也諱誠吾字近夫公寬裕朴素外若無能而內實辨近



(
우의정호하정공기팔세손야휘성오자근부공관유박소외약무능이내실변근
)



居家與官惟理之視事所後考縣監公諱洬妣洪氏情禮無闕所生考判官公諱浚



(
거가여관유리지시사소후고현감공휘속비홍씨정례무궐소생고판관공휘준
)



沒時公年已衰而持制不怠妣李氏前卒壯歲益可觀其受焉及其爲官惟奉法愛



(
몰시공년이쇠이지제불태비이씨전졸장세익가관기수언급기위관유봉법애
)



人是務民愛指如父母負訟者亦退無一言而厭於心故觀察使李公泰淵一以人



(
인시무민애지여부모부송자역퇴무일언이염어심고관찰사이공태연일이인
)



所難蔽者委之御史呂公聖齊衰以其政專在蠲役盡誠賑飢頌譽無異口而同春



(
소난폐자위지어사여공성제쇠이기정전재견역진성진기송예무이구이동춘
)



宋公浚吉至聞於筵席 上嘗賜品服以寵之德山時給倭縞鶴以後期當免民



(
송공준길지문어연석 상상사품복이총지덕산시급왜호학이후기당면민
)



老少男女畢出至齋沐禱神奔走畢羅竟得無事在燕岐飢民襁屬日以千數其



(
노소남녀필출지재목도신분주필나경득무사재연기기민강속일이천수기
)



疾疫者雖夜心問其死生以故無不感動時朝家以民之立碑多出於諛而禁之



(
질역자수야심문기사생이고무불감동시조가이민지입비다출어유이금지
)



燕民不敢遠則磨崖而紀公惠後聞公訃相聚其下三日哭奠焉公嘗惟曰庶人



(
연민불감원칙마애이기공혜후문공부상취기하삼일곡전언공상유왈서인
)



在官者古有常祿後世無是而欲其無邪私難矣故到官必爲之制其産而嚴禁



(
재관자고유상록후세무시이욕기무사사난의고도관필위지제기산이엄금
)



其舞弄要索民亦賴之公少績文中癸酉士旣屢擧不第則嘆曰白首場屋恥也



(
기무롱요삭민역뢰지공소적문중계유사기루거불제칙탄왈백수장옥치야
)



不復赴公車三爲寢郞一爲督郵而內資奉事典設別檢皆其所歷也公以賢能



(
불복부공차삼위침랑일위독우이내자봉사전설별검개기소력야공이현능
)



久困於詷遷朝廷嘗錄夏亭公淸白超陞公六品職在內爲翊衛司衛率形曺佐郞



(
구곤어동천조정상록하정공청백초승공육품직재내위익위사위솔형조좌랑
)



外則德山懷德和順也末爲燕岐則又不欲屈首吏役卽歸廣州之栗峴里公治績



(
외칙덕산회덕화순야말위연기칙우부욕굴수이역즉귀광주지율현리공치적
)



旣著朝庭將畀以大洲牧 崇禎甲寅五月十二日卒京第春秋六十七葬于



(
기저조정장비이대주목 숭정갑인오월십이일졸경제춘추육십칠장우
)



陽川東面坤坐艮向之原祖諱夢翼僉正曾祖諱用恭監察後以子尙運貴



(
양천동면곤좌간향지원조휘몽익첨정증조휘용공감찰후이자상운귀
)



贈公議政府左叅贊夫人朴氏封 贈視公命夫人考錦溪君東亮 宣廟朝名臣



(
증공의정부좌참찬부인박씨봉 증시공명부인고금계군동량 선묘조명신
)



夫人婦德克備三男長卽尙運今年平安道觀察使尙載文科翰林尙輿夭女適別坐



(
부인부덕극비삼남장즉상운금년평안도관찰사상재문과한림상여요여적별좌
)



申暹次李徵善觀察生鳳瑞鳳輝鳳逸鳳協鳳采翰林生鳳庭鳳齡申別坐男志華



(
신섬차이징선관찰생봉서봉휘봉일봉협봉채한림생봉정봉령신별좌남지화
)



處華夢華李徵善有系子德邵余懷德人懷實公之桐鄕而余偏受習池好今觀察奉



(
처화몽화이징선유계자덕소여회덕인회실공지동향이여편수습지호금관찰봉
)



玄石朴公世采狀以幣請銘余與邑人久碑於口不但以石而已奚敢辭公之善行



(
선행봉현석박공세채상이폐청명여여읍인구비어구부단이석이이해감사공지
)



不可勝記而有一羽觀鳳者公有駿馬隣人以善價鬻之纔數日而斃卽盡以其價還



(
불가승기이유일우관봉자공유준마인인이선가죽지재수일이폐즉진이기가환
)



之此古之或難者其所存心如此宣其無往而不善也銘曰 事修於家職得於官何



(
지차고지혹난자기소존심여차선기무왕이불선야명왈 사수어가직득어관하
)



必今人在古亦難而終下僚君子攸歎遂尙後人以佐興運是謂天定勉哉嗣訓



(
필금인재고역난이종하료군자유탄수상후인이좌흥운시위천정면재사훈
)



領中樞副使致仕奉朝賀宋時烈撰



영중추부사치사봉조하송시열찬



判敦寧府事李正英書



판돈령부사이정영서


 


 



고려의 처음 터를 닦을 때에 문화 류대승 차달이 크게 들어났다
.
그 후로 모든 류로 성을 하는 이는 다 대승공에 근본한다
.
휘 관이 계시어 본조에 우의정으로 호는 하정이니 공은 그의
8
세손이다
.



공의 휘는 성오요 자는 근부이다
.
공이 관유
(
寬裕
)
하고 소박함으로 겉으로는 무능한 것 같으나 안으로는 실로 변근
(
辨近
)
함이 분명하므로 집에나 관에 있어서 범사
(
凡事
)
를 다 이의
(
異義
)
로 행하다
.



양부인 현감공 휘 속과 비 홍씨를 섬길새 정과 예를 극진히 하여 빠짐이 없었으며 생부인 판관공 휘 준이 몰
(

)
하니 그 때에 공의 나이 이미 쇠로
(
衰老
)
하였지만 예제
(
禮制
)
를 갖추어 게을리함이 없었던바 비
(

)
이씨는 앞서 공이 성장한 해에 졸
(

)
하였으니 더욱 그 행실을 가히 볼지로다
.



그 임관에 미쳐서는 오직 법을 받들고 백성을 사랑하기를 힘쓰니 백성이 또한 사랑하기를 부모같이 하였으며 패송
(
敗訟
)
한 자라도 또한 물러가서 일언도 없고 마음에 싫어함이 없었다
.
이러므로 관찰사 이공
(
李公
)
봉연이 한결 같이 사람이 결단하기 어려운 것은 다 위탁하고 어사 여공
(
呂公
)
성제는 그의 정치가 오로지 복역을 감소하고 진기
(
賑飢
)
에 주력함에 있음으로 송성
(
頌聲
)
이 일구동사
(
一口同辭
)
로 적적
(
籍籍
)
함을 쇠양
(
衰揚
)
하고 동춘송공 준길은 경연석에서 상주
(
上奏
)
하니 상
(

)
이 품복
(
品服
)
을 하사하여 총애하시다
.



덕산원으로 있을 때 왜
(

)
에게 흰 학을 준 이후 면직을 당하게 되니 백성이 남녀노소가 출동하여 제계
(
齊戒
)
목욕하고 무사하기를 신명께 기도
(
祈禱
)
하여 분주
(
奔走
)
함에 이르니 마침내 무사함을 얻었다
.



연기원으로 있음에 기민
(
飢民
)
이 연이어 끊이지 않고 날로 천명씩이나 되는데 그 가운데 병든 사람은 비록 밤중이라도 반드시 그 사생
(
死生
)
을 물었다
.
이러므로 감동치 않는 이 없었다
.



당시에 국가에서 백성들이 비
(

)
를 세우는 것이 많이 아첨한데서 나옴이 많다하여 금지를 하니 연기군민이 감히 어기지 못하고 단애
(
斷崖
)
를 갈아 공의 은혜를 기록했더니 후에 공의 부고
(
訃告
)
를 듣고 서로 그 단애하
(
斷崖下
)
에 모여
3
일을 곡
(

)
하고 제사를 지내었다
.



공이 일찍 말하기를 서인
(
庶人
)
이 관직에 있는 이가 옛날에 상록
(
常祿
)
이 있었지만 후세에 없엔 것은 또한 그 사특함을 없애고자 함이니 사생활은 곤란하다
.
그러므로 관에 이르면 반드시 후세를 위하여 그 산업을 제정하고 또 그 농간
(
弄奸
)
함이 토색
(
討索
)
함을 엄금하니 백성들이 또한 크게 힘 입었다
.



공이 소년에 문업
(
文業
)
을 숭상하여 계유
(1633)
에 진사에 합격하고 그 여러번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합격치 못하니 탄식하여 이르기를

백수로 응시함이 수치
(
羞恥
)
이다

하고 다시는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
.
세번 참봉을 지내고 한번 찰방을 지내고 내자시참사
(
內資寺奉事
)
와 전설사별검
(
典設司別檢
)
을 지냈으니 다 그의 역임
(
歷任
)
한 바이다
.



공이 현능
(
賢能
)
함으로서 오래 말직에 곤궁
(
困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