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연혁
문화류씨 수보(修譜)연혁
족보는 그 씨족의 계보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우리 류문(柳門)에서 발간하였으니 이른바 영락보(永樂譜)입니다. 이에 지금까지 수보 경위를 차례로 간략히 기술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수보연혁
영락보(永樂譜)
양도공 영(良度公 穎)께서 고금의 사적을 상고하고 내외 종지(內外 宗支)를 분별하여 족보 1권을 편찬, 세종(世宗) 5년 癸卯(1423)에 완성을 보았으니 이른바 <영락보>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이다.
가정보(嘉靖譜)
첨정공 희잠(僉正公 希潛)께서 그 숙부 송암공 관(松菴公 灌)의 피화에 연좌되어 의성(義城)에 유배중 삼도관찰사 및 삼남(三南) 각 고을 수령들의 후원을 얻어 착수 24년만인 명종(明宗) 20년 乙丑(1565)년에 완성한 이른바 <가정보> 10권이다. 이에 각 고을 관장 191인이 이 사업에 호응하고 경상도 40여 고을에서 각수(刻手) 48명이 동원되었다. 이 족보는 특히 본손은 물론 외손에 이르기까지 계통이 자상하여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계보학 연구에 정평있는 자료로서 인정받고 있다.
기사보(己巳譜)
하담공 공량(荷潭公 公亮)의 손자이신 처후(處厚)씨께서 족제인 당시 호조판서 상운(戶曹判書 尙運)의 권유로 수보에 착수한 지 7년만인 숙종(肅宗) 15년 己巳(1689)에 완성한 족보로서 이른바 <기사보> 5권이다.
경신보(庚申譜)
문성군 수(文城君 洙)의 후손인 환문(煥文)씨께서 庚申에 수보에 착수, 3년만인 영조(英祖) 18년 壬戌(1742)에 간행한 족보로서 이른바 <경신보> 10권이다.
을유보(乙酉譜)
앞서 간행된 경신보가 단기간에 발간되어 누락된 종중이 많음으로써 경신보를 반질 즉시 수보에 착수하여 20여년 후 영조(英祖) 41년 乙酉(1765)에 간행한 속보(續譜)로서 13권이다. 2본이 있는데 1본은 좌상공파 달해(達海)씨가 대구(大邱)에서 간행하고, 1본은 충경공파 도행(道行)씨가 천안(天安)에서 간행하였다.
정사보(丁巳譜)
가평군수 병균(加平郡守 秉均)께서 정조(正祖) 21년 丁卯에 착수, 7년만인 순조(純祖) 3년 癸亥(1803)에 완성한 족보로서 이른바 <정사보>27권이다. 제반 기록이 자상하고 누락된 자손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체계가 확립되어 우리 문화류씨세보 중 가장 정평있는 족보로 일컫는다.
갑자보(甲子譜)
절충 승기(岊翀 昇基)께서 철종(哲宗) 壬戌에 수보에 착수, 3년만인 고종(高宗) 원년 甲子(1864)에 간행한 족보로서 이른바 <갑자보>37권이다. 우리 문화류씨의 대동항렬이 이 때 제정되어 종파와 지역을 막론하고 그에 따라 준행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병인보(丙寅譜)
승지 인철(承旨 寅哲)께서 癸亥 5월 수보에 착수, 4년만인 丙寅(1926) 3월 완간한 족보로서 이른바 <병인보> 60권이다. 그로부터 5년 후 辛未(1931)에 문화류씨 추선록(追先錄)을 간행했는데 당시 봉양 인호(鳳陽 寅鎬)의 노고가 컸었다.
병진보(丙辰譜)
庚戌 4월 죽당 인봉(竹堂 寅鳳)께서 수보에 착수하여 진행 도중 별세하심으로 인하여 유영 근영(流影 根榮)께서 보사를 수임하여 丙辰(1976) 8월에 완간한 족보로서 반질 후에 그 잉여금으로 현 문화류씨 대종회관 기지를 마련하였으며, 이로부터 대종회가 결성되었다.
세계보(世系譜)
癸亥 5월 편찬에 착수, 이듬해 甲子(1984) 2월 완간한 계보로서 이른바 <세계보> 5권이다. 역시 유영 근영(流影 根榮)이 주간하여 반질 후에 그 잉여금으로 현재 대종회관이 건립되었다.
보감(寶鑑)
丙寅(1986) 3월 유영 근영(流影 根榮)이 편찬에 착수하여 만 4년 후 庚午(1990) 3월 완간된 바 이른바 <문화류씨보감> 3권인데 1권은 선세편으로 시조로부터 조선 철종 말년까지의 선조님들 중 사행이 훌륭한 분들의 사적을 소개하였고, 2권은 종중편으로 전국에 산재한 종중의 역사와 현황을 종지순으로 편집 소개하였으며, 3권은 현세편으로 고종 원년 이후 편간 당시까지의 인물들을 수록하였다.
무자보(戊子譜)
浩倓께서 癸未(2003) 8월 편찬에 착수하여 戊子(2008) 3월에 완성한 족보로서 총목 1권외 2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대흐름에 따라 전자족보를 발행하여 컴퓨터를 통하여 쉽게 내용을 검색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조선중엽의 세보 때부터 실려 있던 원파록(源派錄)을 삭제함으로써 족보에서의 허구성을 제거하여 문화류씨 족보의 자존심을 세웠고, 제반 공가문헌에 근거하여 사실들을 기록함으로써 영락보와 가정보의 전통을 계속 빛내었다.
무자보(2008년)
정오표
위치 | 오 |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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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목 p.126, 2행 | 一六八三 | 一八六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