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족보
문화류씨의 유래와 역사
문화류씨 족보
한국 최초의 족보는 1423년(세종 5년)에 편찬된 문화류씨(文化柳氏) 영락보(永樂譜)인데, 아쉽게도 현재 서문만 남아있다. 그 후로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족보인 성화보(成化譜, 1477년 성종 7년; 3권, 364 페이지)와 문화류씨 가정보(嘉靖譜, 1562년 명종 17년; 10권 2204 페이지)가 나왔는데 현존한다. 이 두 족보는 내외손(內外孫)을 차별 없이 동격(同格)으로 취급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사위의 경우 성명만 쓰고 본관이나 선조의 기록은 일체 쓰지 않은 반면 그 자손(외손 및 외외손)은 6-7대까지 자세히 적고 있어 핏줄을 중시하고 있다. 가정보의 경우 4만 2천명(이 가운데 문화류씨는 소수임)이 등재되어 있다고 하는데, 양자 기록이 나오고 서자(庶子)의 기록은 없으며, 개가한 여자의 남편을 전부(前夫)와 후부(後夫)로 기록하고 있으며, 기록의 정확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종에서 중종에 이르기까지 75년간 나라에서 89회의 문과(文科) 과거가 실시되어 1595명의 급제자가 배출되었는데 그중 1120명의 이름이 가정보에 올라 있다. 그리고 그들의 거의 대부분인 1071명이 문화류씨와 혼인관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전체 급제자의 약 70%를 차지하는 놀라운 수치이다.
가정보 이후 여러 차례의 족보 간행이 있었고, 가장 최근이 2008년에 나온 "문화류씨세보"(무자보)이다.